"햇볕도 안 들던 집에 공부방이 생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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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티로리 봉사단원들이 미정이네 집의 다락방 천장을 보수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합판을 자르고 있다.[박종근 기자]

나누는 기쁨
전국자원봉사대축제가 ‘봉사로 하나 되는 희망 한국’이란 주제로 11일 막을 올렸다.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150여만명의 자원봉사자는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함께하고,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 롯데월드 직원으로 구성된 ‘로티로리’ 회원들이 11일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서 낡은 집을 수리하고 있다.[박종근 기자]

서울 성동구 금호동. 재개발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어 동네가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가파른 골목길이 이어지는 달동네다. 이 골목길을 500여m 힘겹게 올라가면 끝자락에 김미정(가명.15)양 모녀가 사는 월세방이 웅크린 듯 자리잡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나타나는 조그마한 부엌에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방 한칸이 김양의 집 전부다. TV.냉장고를 빼고는 변변한 세간도 없다. 햇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불을 켜놓아야 할 만큼 어둠침침하다. 평소 손님도 거의 찾지 않는 이곳에 11일 오전 '롯데월드 로티로리 봉사단'회원 12명이 몰려들면서 왁자지껄해졌다. 롯데월드 직원으로 구성된 로티로리는 1999년 출범해 현재 6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5년 동안 '사랑의 집 만들기'자원봉사를 벌여 지금까지 120여가구를 새롭게 바꿨다.

회원들이 공구통을 열자마자 금세 '우우웅' 합판을 자르는 전기톱 소리와 '텅텅텅' 전기망치 소리가 집안을 메웠다. 회원들은 방안의 벽지와 장판을 뜯어낸 뒤 우중충한 부엌에 페인트를 칠해 흰색으로 산뜻하게 바꿔놓았다. 낡은 싱크대 대신 그 자리에 중고 싱크대를 새로 들여놓았다. 회원들이 회사에서 사용하던 싱크대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이어 물이 새는 수도꼭지와 누전 위험이 있는 전선을 새것으로 갈았다.

그러나 미정이는 무엇보다 잡동사니를 넣어 두던 다락방이 공부방으로 바뀐 것에 환호했다. 입구가 좁고 천장이 낮아 간신히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앉은뱅이 책상이 들어섰고 형광등이 환하게 다락방을 비추었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어 하늘이 보였어요. 벽지 대신 25년 전인 79년 4월달 신문이 누렇게 색이 변한 채 붙어 있었어요." 봉사단 김대규(41.상품팀 계장)단장의 설명이다.

회원들은 이날 미정이네 집을 단장하기 위해 40만원을 호주머니에서 털어 합판 등을 구입했다. 구슬땀을 흘린 결과 오후에는 작지만 아담한 '새집'이 탄생했다. 봉사단원들은 마무리 공사를 끝내고 13일 오후 집들이를 할 계획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난 여름 오빠가 군에 입대한 미정이는 신경통으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47)와 둘이서 살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30만원과 한국기아대책기구에서 보태주는 4만2000원의 지원금으로 어렵사리 생활한다.

어머니 김모씨는 "어려운 집안환경 속에서도 반에서 3~4등을 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미정이를 위해 공부방을 만들어 줘 고마워 뭐라 할 말이 없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미정이는 "커서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 단장은 "나도 어릴 적에 다락방에서 공부했었다"면서 "우리의 봉사로 미정이가 훌륭히 자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다면 로티로리 봉사단은 더 바랄 것이 없다"며 흐르는 땀을 훔쳤다.

민동기 기자 <minkiki@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전국자원봉사대축제는 1994년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중앙일보가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한국자원봉사협의회와 공동으로 개인.가족.단체.기업별 봉사활동을 벌인다. 자원봉사자들은 환경.의료.복지.재난복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스로 장소와 시간을 정해 봉사활동을 한다. 참가자들이 활동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면 주최 측은 아이디어의 참신성.준비정도.공헌도.파급효과 등을 기준으로 대상 1개 팀, 금상 4개 팀 등 26개 팀을 선정해 상금(총상금 2350만원)과 상패를 수여한다. 시상식은 12월 14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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