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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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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내가 봉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야. 어린이 환자들에게 과자를 나눠줬지. 문맹 노인들을 가르치고 자살 예방 상담전화에서 일했어. 수화 강습, 안내견 훈련에 돌고래 보호 활동까지 했다니까.”

명문 사립고의 우등생이자 교내 신문 편집장 패리스가 밝힌 하버드대 입성 전략이다. 내신과 SAT(미국수능시험) 성적은 기본. 정작 일류대 입학을 좌우하는 건 플러스 알파란 얘기에 공부만 죽어라 해온 동급생 로리는 기가 팍 죽는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미국 드라마 ‘길모어 걸즈’ 중 한 장면이다.

실제로 성적 외에 각종 정보를 종합해 당락을 결정짓는 게 미국식 대입 전형, 곧 입학사정관제다. 잘 알려져 있듯 그 뿌리는 그리 떳떳지 않다. 성적만으로 뽑으니 유대인 학생이 너무 많아지자 동문 자녀에게 유리하도록 주관적 요소를 도입한 거다. 1920년대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 중심으로 비롯된 일이다.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게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다. “여러분이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누가 달라지겠습니까.” 명문대 총장들을 워싱턴에 불러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공평하게 뽑을 것을 주문했다. 예일대 총장 킹먼 브루스터가 총대를 멨다. 새 입학처장을 임명한 뒤 특정 그룹에 대한 불이익 및 우대 관행을 줄이도록 했다. 그 결과 신입생 중 유대인 비율이 65년 16%에서 1년 새 30%로 다시 높아졌다. 흑인·여성 등 소수 집단 출신이 얼마 안 가 절반을 넘어섰다(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

이후 인종차별적 색깔은 벗어났지만 ‘자유재량’과 ‘불투명성’ 원칙은 여전하다. 일류대 지망 학생과 학부모는 각기 다른 대학 입맛에 맞을 ‘스펙’을 갖추느라 진땀을 뺀다. 산더미 같은 서류에 지친 입학사정관 눈에 번쩍 뜨일 자기소개서를 쓰기도 쉽지 않다. 스펙에 따라 갈 만한 대학을 콕 집어주고 자기소개서를 고치는 대가로 수천~수만 달러를 받는 대입 컨설턴트가 성업 중인 건 그래서다.

국내 입학사정관제 확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롤 모델로 삼은 미국의 현주소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게다. 무엇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참, 아까 그 패리스는 하버드대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곤 울분을 토한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성적도 스펙도 빵빵한 그녀가 왜 떨어졌는지 혹 우리 입학사정관들은 답해줄 수 있을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