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음악감독 조영욱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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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영화 제작비는 크게 뛰었지만 음악에 대한 투자는 절대 부족해요. 아직도 음악 자체를 액세서리로 여기는 경향이 짙죠.한국영화가 성숙하려면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한국영화계에서 음악감독이란 독특한 타이틀로 활동하는 조영욱(38)씨의 제언이다.조씨는 올 하반기 최고 화제작 ‘공동경비구역 JSA’의 음악을 맡았다.영화에 나오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의 인기도 요즘 폭발적이다.

“사실 ‘이등병의 편지’는 박찬욱 감독이 골랐습니다.저는 처음에 반대했죠.군대 얘기라고 군대 노래를 넣을 필요는 없잖아요.그런데 감독의 의견이 좋아 따르기로 했습니다.”

1997년 영화 ‘접속’의 OST음반을 70만장 판 그로선 대단히 겸손한 자세다.

“흔히 사람들은 제가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운좋게 선곡해 히트를 쳤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음악감독은 작품 분위기에 맞게 영화 전체의 음악을 조율하는 사람입니다.‘…JSA’에 나오는 음악 20곡 가운데 13곡은 새로 작곡한 겁니다. 제 곡은 아니지만 작곡가를 찾고,전체 리듬을 결정하고,믹싱작업에 동참하고 등등 할 일이 많죠.”

조씨는 한국영화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 그 전의 영화음악이 주로 감독의 주문사항을 작곡가나 음악담당이 단기간에 뚝딱뚝딱 해결했다면, 조씨는 시나리오 기획부터 편집 완료까지 음악부문을 책임지고 총괄한 첫번째 경우다. 한국영화에 음악 프로듀서 시스템을 선구적으로 접목한 것.그런 공로로 최근 한국영화축제와 춘사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그가 오늘에 이른 데는 물론 ‘접속’의 대히트가 크게 기여했다. 이후 ‘조용한 가족’‘해가 서쪽에서 뜬다면’‘해피 엔드’‘텔미 섬딩’‘해변으로 가다’ 등에 참여했고, 지금은 내년 개봉할 ‘하루’를 작업하고 있다.‘접속’ 이후 3년 동안 6억여원이란 짭짤한 소득도 올렸다.

“남들은 운이 좋다고 합니다.인정합니다.그러나 영화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킨 것은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접속’에서 시도한 영화 속 음악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주로 팝송을 골라 서양음악 편중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지적했다.대답이 솔직했다.어려서부터 들은 음악이 팝송 중심이라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라고 고백했다.그러나 앞으론 관심·공부의 폭을 넓혀 한국민요의 현대화에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저는 사정이 좋은 편입니다.제작비의 3% 정도를 음악에 끌어들이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영화들이 음악에 1%도 들이지 않습니다.그래서야 질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할리우드에선 10%까지 투자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영화에도 뮤지컬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 연주를 넣고 싶어요.전문가들은 음감의 차이를 쉽게 알아채거든요.”

조씨의 재산 1호는 7천여장의 CD.LP음반 7천여장을 처분하고 남은 것이다. 클래식부터 록까지 장르도 다양하다.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에 귀를 쫑긋하며 듣기 시작한 음악감상 습관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최근엔 요리에도 취미를 붙인 노총각 아저씨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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