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 흔드는 손 … 그들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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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600 선에 겨우 턱걸이했고, 미국 다우존스지수와 일본의 닛케이지수도 각각 10000 선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행보다.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석 달 만에 3000 선이 무너졌다. 불안의 근저에는 G2가 있다. 미국에서는 내수의 근간인 일자리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선 긴축 정책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해법을 찾지 못하는 유럽의 재정적자는 불안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시장이 과민 반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민간 투자가 살아나려면 어차피 시간이 필요하고, 돈줄을 죄는 것은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3대 변수를 점검했다.



미국  4분기 성장률 5.7% … 고용시장은 찬바람

2010년 첫 달 미국 증시는 부진했다. 다우지수는 한 달 동안 3.5%, 나스닥지수는 5.4%나 곤두박질했다. 월간으론 1년여 만에 최악의 성적이었다. 전문가 예상을 뛰어넘는 기업 실적이 계속 발표되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충격은 더 컸다. 그리스를 진원지로 한 유럽 금융위기와 중국 긴축 우려에 맥을 못 췄다.

그러나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5.7%(연율 기준)로 6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로는 -2.4%로 1946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지만 4분기에 급반등해 경기 회복의 기대를 살렸다. 4분기 ‘깜짝’ 성장률이 나온 건 기업들이 재고조정에 착수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예상보다 매출이 늘어 재고가 갑자기 줄자 주문을 늘려 줄어든 재고를 채워넣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재고조정은 보통 내수가 회복돼 기업이 생산을 늘리는 전 단계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월가에선 경계론이 여전히 강하다. 고용이 살아나지 않는 한 재고조정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래리 서머스 위원장도 지난달 3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당혹스러운 것은 실업률”이라며 “25~54세의 노동적령인구 5명 중 1명이 실업자”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고용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섰다. 그는 이날 앞으로 1년 동안 ▶중소기업이 종업원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5000달러를 보조금으로 주고 ▶기존 직원의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올리면 사회보장세를 환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의 대책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었던 77~78년 성공했던 정책을 차용한 것이다. 당시 카터 정부는 이 정책으로 2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자동화 투자에 주력해 고용 없는 성장이 가속화하는 만큼 고용 회복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중국  자산거품 빼기 … 대출 조이고 금리는 유지

중국 상하이종합주가지수도 1월의 마지막 주였던 지난주에 139포인트(4.5%) 하락했다. 중국 시장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홍콩·대만 등 동남아 증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시장은 중국 대도시의 일부 은행이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긴축 신호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인도가 지급준비율을 5%에서 7.5%로 높이면서 신흥시장의 긴축 공포를 더 키웠다.

시장의 걱정은 일리가 있다. 중국의 신규 대출은 2008년 4조9000억 위안에서 지난해 9조6000억 위안으로 두 배가 됐다. 대출 증가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졌다. 베이징 주택가격지수는 지난해 12월 109.2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급격한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계속 돈을 푸는 바람에 자산 시장의 거품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자산 거품이 경제에 부담이 되지만 갑자기 빼면 더 큰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009년 거시경제상황 분석보고서’를 통해 “적당하고 느슨한 통화정책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출 규모를 줄이는 식의 미시적인 조정은 하겠지만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또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가 출구전략을 쓸 때까지는 중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중국이 긴축 정책의 강도를 높이면 국제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출구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안정적 성장을 위한 기반이 더 튼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유럽  재정적자 발등의 불 … 각국 허리띠 조이기

유럽의 가장 큰 고민은 그리스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그리스의 재정난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걱정이 큰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포르투갈의 재정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으며, 영국 재정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리스는 최근 중국에 구조요청을 했다. 250억 유로(약 40조원)어치의 국채를 사달라고 했지만, 중국은 거절했다. 다급해진 유럽연합(EU)은 범유럽 차원의 그리스 지원책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리스가 고비를 넘기려면 약 540억 유로의 자금이 필요하다.

문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EU 회원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08년 2.3%에서 지난해 6% 수준으로 높아졌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나랏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올해는 이 비율이 7%가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주로 복지 예산을 깎는 식이다. 프랑스는 앞으로 3년간 정부 지출을 동결해 2013년에는 재정적자를 GDP의 8%대에서 3% 이내로 줄일 방침이다. 스페인은 500억 유로의 공공 지출을 줄일 계획이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한번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그리스 등에 대한 긴급 지원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지속적으로 금융시장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지난달 30일 “재정 문제가 앞으로 7년 동안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 레이트 뱅크오브아메리카 투자전략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국채 투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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