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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으로 국악 연주한 서울예술대 디지털아트학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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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애플 아이팟으로 구현한 사물놀이. MP3플레이어나 스마트폰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기기가 악기를 대체하는 흐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예술대 교수와 학생들이 애플의앱스토어인 아이튠즈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아이팟 표면을 두드려 꽹과리·장구·징·북등 전통 타악기의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 냈다. [김경빈 기자]

서울예술대학의 교수와 조교 이상 교직원 등 180명은 1월 한 달간 학교 측의 전액 지원으로 아이폰과 미니노트북인 넷북을 지급받았다. 아날로그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예술학교에서 웬 첨단 디지털 기기인가. 평소 과학적 사고를 강조해 온 이 대학 유덕형 총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예술과 과학의 접목’을 강조해 왔다. 근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스마트폰과 ‘디지털노마드(유목민)’의 상징인 넷북이 그런 정신을 일깨울 키를 쥐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아이팟 연주회는 최영준 디지털아트학부 교수 이외에 이 학부의 정주환·박지은·김효근·박다정·노하균씨 다섯 학생의 끈기 있는 노력이 빚어낸 것이다. 지도교수와 연주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아예 졸업작품으로 공연까지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팟 화면을 만지면 소리가 나게 했다. 시범 프로그램을 서울 인사동에 들고 가 사람들에게 써보도록 하며 반응을 살폈다. 사물놀이를 들어본 적이 있는 파란 눈의 외국인들까지 흥미로워했다. 국악기 소리를 택한 건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서양악기 소리를 내는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흔해져 한국인 고유의 소리를 내는 애플리케이션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졸업연주회에 활용한 국악 애플리케이션을 애플 앱스토어에 무료 애플리케이션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세계인들이 마음껏 국악을 들으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이팟 사물놀이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서울예술대학교수들과 학생들(위). 이 대학 디지털아트학부 기자재실에서 학생들이 사물놀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과목은 졸업반의 공동제작실습. 예술과 공학을 전공한 김호동·김재하·김계원·강호정 등 디지털아트학부 교수들이 참여해 3차원(3D) 영상 등 예술과 과학기술이 접목된 다채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과정이다. 서울예술대학은 2003년 국내 처음 디지털아트학부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런 작업들이 국악의 국내 대중화에도 기여하길 원한다. 꽹과리나 징을 사기 힘든 일반인들도 전통음악의 음률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게 되리란 기대다. 박지은씨는 집에 놀러온 초등학생 조카들에게 아이팟 연주를 해 줬더니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고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책에서 배운 전통 악기 소리를 쉽사리 접하는 건 물론이고 손수 작곡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악기 연주자들에게 이 ‘첨단 디지털 악기’가 위협이 되지 않을까. 이들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효근씨는 “컴퓨터 음악은 실제 연주 음악과 엄연히 시장이 다른 독자 영역”이라고 말했다. 첨단 미디어가 예술가들의 창조적 발상과 대중과의 소통 여지를 넓혀 줄 것이란 기대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에서 사용되는 ‘사물놀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 졸업반 학생들. 연주그룹 이름은 ‘디지타’. 왼쪽부터 정주환·박지은·박다정·김효근씨.

“첨단기술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어요.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이 더 많은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도 이런 길을 적극 찾아나서야 합니다.”(정주환씨)

서울예술대학이 일찍이 디지털아트학부를 만든 것도 이런 흐름에 적극 몸을 싣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3일엔 이 대학 경기도 안산캠퍼스 예술공학센터 스튜디오와 미국 뉴욕의 라마마센터 그레이트존스 스튜디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공연도 펼쳤다. 두 지역에서 따로따로 올린 작품이지만 관객 눈에는 한 장소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공연을 보는 것처럼 꾸몄다. 첨단기술이 나라를 뛰어넘어 떨어진 공간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교수들은 아이폰 같은 디지털기기를 수업시간에도 적극 활용한다. 연극과의 정승호 교수는 무대미술 수업을 하면서 아이폰으로 바로크 가구나 건축 등의 이미지를 즉석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배성례 대외협력처장은 “아이폰을 구입한 교수들은 젊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커졌다. 과학기술을 적극 융합해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큰 흐름에서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아이팟(iPod)=애플의 MP3플레이어.

2001년 1세대 아이팟 출시 이후 아이팟 미니(2004년), 아이팟 나노(2005년), 아이팟 터치(2007년) 등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시리즈를 선보였다. 첨단 디자인과 기능을 내세워 2004년 말 미국 디지털 음악재생기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려왔다.

앱스토어(App Store)=‘애플리케이션 스토어’의 줄임말로 스마트폰용 콘텐트를 사용자가 편리하게 선택하도록 만든 개방형 모바일 장터다. 애플의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용 앱스토어가 가장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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