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영화인 한갑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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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 남산 자락인 필동에 자리잡은 한갑진(77.사진)씨의 저택엔 쇠락의 기운이 완연했다.

한때 유명 영화인들이 들락거리던 대지 1천여평의 저택엔 인적이 드물고 2층 양옥 방방마다엔 불교책들만 가득하다. 책무더기에 묻혀있던 한씨는 노(老)처사의 인자한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불교를 제대로 알리는 데 남은 생을 바치고 있는 중입니다. 불교 관련 책을 만들어 전국의 사찰과 스님들에게 보내주는 일이지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있는 일이니까요. "

한씨는 최근 자신이 번역한 아함경 4권과 저서 '새천년 헤쳐갈 불교' 를 각 6천부씩 모두 3만 권을 찍어 전국에 뿌리고 있다.

80년대말에 쓴 '부처님의 생애' 을 그동안 1만여 권 전국에 기증했고, 그 이전에 쓴 '인도와 불교' 나 '알기쉬운 불교' 같은 책들까지 포함하자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책을 보시(布施)해온 셈이다.

한씨는 원래 영화제작자협회장까지 지낸 영화인이다. '한진흥업' 이란 영화사 대표로 '김의 전쟁' '은마는 오지않는다' '난중일기' 등 수백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로키' '깊은 밤 깊은 곳에' '스팅' 등 많은 외화를 수입했다. 돈도 적지않게 벌었다고 한다.

부인 손병희(70)씨가 "주위에선 '영화에서 번 돈을 전부 불교에 갖다 바친다' 고들 말하지요.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아요. 저 분이 하고싶어하는 일이고 또 옳은 일이니까요" 라고 덧붙인다.

한씨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1972년 아버지의 죽음이다. 의식이 불분명한 아버지를 간호하던 중 머리맡에 놓여있던 '반야심경' 을 보고는 무심코 집어들어 띄엄띄엄 읽었다.

아버지가 "그 노랫소리 참 좋다" 며 의식을 차렸다. 그날 한씨는 아무 의미도 모르면서 반야심경을 목이 쉬도록 독송했고, 며칠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위패를 절에 모셔놓았기에 1년간 매일 새벽 절을 찾았다.

"처음에는 위패에만 절을 했는데, 다들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이왕 절에 왔으니까 부처님한테도 절을 해보자' 는 생각에서 절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왜 절을 하는지, 부처님이 누구인지 궁금해지잖아요. 그래서 불교공부를 시작했죠. "

국내서적이 부족해 외국 출장길에 일본어.영어로 된 불교서적을 구해와 번역해가며 읽었다. 공부한 것이 아까워 73년에 내놓은 첫 책이 '알기쉬운 불교' 다. 1만여 권이 팔려 당시로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1백85cm의 거구에 손이 큰 탓인지 한씨는 지난 20여년간 굵직한 보시를 적지않게 했다. 70년대말에 속리산 법주사에 암자를 지어 기증했고, 80년대초에는 벽제 보광사에 당시 국내최대였던 호국대불(護國大佛) 만드는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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