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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옛 미군 주둔지 43만평 '폐유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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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3일 낮 12시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주택가 인근 텃밭. 녹색연합 관계자들이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지 10분도 안돼 기름에 찌든 시커먼 흙이 나타났다.

이윽고 기름 냄새가 주변에 진동했다. 바로 옆 문학산으로 올라가는 길가 곳곳 조그만 웅덩이에도 기름이 흥건하게 떠다녔다. 기름이 솟아나오는 곳도 적지 않았다.

문학산 주변은 1950년대 초부터 72년까지 미군이 기름 저장탱크 22기를 설치했던 곳. 저장탱크에서 유출된 기름이 토양으로 스며들어 주변 주택가.농지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주민 이종옥(李鍾玉.80)씨는 "기름 때문에 벼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인근 농민 3천여명이 논농사를 포기하고 밭작물을 심는 등 그동안 피해를 보았다" 며 "지금도 10m만 파도 기름이 새어나온다" 고 말했다.

주민 李학철(54)씨도 "60년대부터 우물에서 기름이 떠오르기 시작해 지하수를 먹지 못했다" 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녹색연합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 지역은 현재 페놀.톨루엔 등 유해화학물질로 심하게 오염돼 있다" 며 "미군은 이같은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라" 고 주장했다.

인천녹색연합 박창화(朴昌和.인천전문대 교수)공동대표는 "2개월에 걸친 실태조사 결과 문학산 일대 총 43만평 정도가 기름으로 인한 토양오염 피해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중 24만여평은 지하수.토양 오염이 극심한 상태" 라고 말했다.

그는 "62년 미군 기름탱크에서 인근 개천으로 누출된 기름으로 인해 대형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며 "97년엔 인천시가 이 지역에 민방위교육장을 건설하려 했다가 토양오염에 따른 복구비용이 너무 커 포기했다" 고 주장했다.

녹색연합 임삼진(林三鎭)사무처장은 "이번 사건은 미군 주둔지역의 반환 때 발생한 환경문제에 대해 미군이 원상회복 등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제4조의 허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 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녹색연합은 ▶정부의 전면적인 환경조사▶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SOFA 개정 등을 촉구했다. 또 25일 이 일대 토양.수질 오염 분석 결과를 공개키로 했다.

하재식.김승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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