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일본야구 전설 '네모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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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5년 이후 가능할 겁니다."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5년이라면 너무 오래 걸리는데요. "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뿌리를 내리고 물을 주고, 가지가 자라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으려면 최소한 5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1979년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네모도 리쿠오(전 다이에 호크스 대표이사)와 세이부 라이언스 쓰쓰미 구단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쓰쓰미는 만년 하위팀이던 크라운 라이언스를 인수, 막대한 투자로 팀을 재정비하며 초대 감독으로 네모도를 영입했다.

네모도는 우승 꿈에 들떠 있던 구단주에게 "최소 5년은 걸릴 것" 이라며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잘 익은 열매를 딸 수 있다" 고 설득했다.

네모도는 ▶투.타의 핵이 될 대형 선수가 없으며▶선수들의 성향을 파악해 이끌어줄 코칭 스태프를 키워야 하고▶대형 선수와 코칭 스태프가 있더라도 이들과 조화를 이룰 구단 프런트의 전문 인력이 없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네모도는 3년 동안 소신대로 팀을 정비했다. 그후 히로오카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준 뒤 구단 프런트의 길을 걸었다.

세이부는 1년 뒤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주와의 약속보다 1년이 빨랐다. 이때 네모도의 소감은 더 걸작이었다.

"이번 우승은 운(運)이다. 내년부터가 진짜 실력으로 따내는 우승이다."

네모도의 장담대로 이후 세이부는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 리그 우승 13차례, 일본 시리즈 우승 여덟차례를 차지하며 퍼시픽리그 최고 명문팀으로 자리매김했다.

네모도는 사망했지만 그의 진가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는 94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맡았다. 그때도 그는 5년 후 우승을 전망했다.

1년 뒤 오 사다하루(왕정치)감독을 영입하면서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팀을 운영했다.

99년 그가 시즌 중 사망했지만 다이에는 그의 말대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은 그의 영정을 그라운드로 들고 나가 가슴 찡한 장면을 연출했다.

팀 재정난으로 올해 에이스 구토 기미야스가 연봉이 후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지만 네모도가 키워낸 다이에는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오는 21일부터 요미우리를 상대로 일본시리즈 2연패에 도전한다.

네모도가 준 '가을의 교훈' 은 "우승이란 달콤한 열매는 단기간에 고액 연봉 선수를 무조건 끌어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인재를 발굴해 토양을 갖추고 가지가 굵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는 것이다.

우승에 눈이 멀어 고액의 자유계약 선수들로 화려하게 겉치장만 하고 강팀 흉내를 내는 일부 국내 구단들이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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