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살리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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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박지선(왼쪽)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과 정두희 작가가 모사본 표면을 현미경 기기로 확인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감히 고개 들어 바라보지도 못하던 것이 임금의 얼굴이다. 조선시대엔 최고의 화원(畵員·화가)만이 최상의 재료를 써서 왕을 화폭에 담는 영광을 안았다.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은 그래서 당대 최고의 회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안(龍顔)이 제대로 남아 있는 건 태조·철종의 어진과 영조의 즉위 전 연잉군 시절의 초상 정도다. 500년간 그려진 수많은 어진이 숱한 전란을 거치면서 화재로 소실된 탓이다. 유물만 불에 타 사라진 게 아니다. 어진을 만드는 모든 기술과 그 정신마저 끊겨버렸다. 그런데 이를 되살려 이어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박지선(49) 소장과 정두희(32) 작가다.

정 작가는 태조 어진과 연잉군 초상 모사본을 그렸다. 얼굴이 남아 있지 않은 태조 어진 홍포본도 모사로 되살렸다. 그저 겉모양만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다. 옛 기법과 재료까지 알아내 재생하는 작업이다.

“모사는 ‘위작’이라는 부정적 시선이 많았죠. 그러나 동양화의 전통에선 선조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이 중요한 전수 방법이었답니다.”(박지선)

박 소장은 수월관음도(보물 1286호)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등을 보수한 우리나라 서화류 보존 분야의 1인자로 꼽힌다. 그의 연구소는 정확한 모사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현미경·X선 분석 등으로 초상화에 쓰인 안료의 성분을 분석하고 채색 순서까지 확인한다.

“유물은 몇 점 남아 있지 않지만 의궤(儀軌·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에 어진 제작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요. 사용된 안료와 종이·비단·붓·먹·벼루 등 재료의 종류와 수량이 다 나타나지요. 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 재료와 기법을 재현하려 애쓰지요.”(정두희)

물론 옛 방식을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옛 그림은 뒷면을 먼저 칠한다. 비단을 통해 뒷면의 색이 비치면 또 다른 색을 낸다. 그 뒤 앞면을 칠한다. 물감만 해도 튜브에서 쭉 짜내 팔레트에서 개어 쓰면 끝나는 게 아니다. 색을 내는 천연 광석을 아교에 개어 한 차례 칠한다. 광석을 씻어서 말린 뒤 다시 아교에 개어 덧칠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연한 색이 덧칠을 통해 제 색을 내는 것이다.

“천연물감은 입자가 둥글어요. 화학물감은 입자가 뾰족해서 붓에 걸리죠. 물감 알알이 만들어내는 빛과 질감의 차이에서 감동을 주고 싶어요.”(정두희)

완성된 모사본을 옛 방식대로 장황(裝潢·표구)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옛 그림의 70% 이상이 일제시대에 일본식 표구로 옷을 갈아입었다. 연구소에선 옛 한국식 장황을 고수한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려니 그림 하나 그리는 데에 반년이 걸리고, 사전 분석과 사후 작업까지 포함하면 1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게 제작한 모사본은 박물관 전시실에 걸리고, 원본은 보존 수장고로 들어간다. 어진 외에 여러 문중의 초상화도 이런 방식으로 모사본을 제작했다.

“경기도박물관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하면 모사본을 문중에 주는 거죠. 그럼 유물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문중에선 계속 제사를 지낼 수 있으니까요.”(박지선)

정 작가는 경기전(사적 339호)의 부채 등 그림이 들어간 몇몇 유물을 같은 방식으로 재생했다. 모사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유력한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이 아직 전통의 완전한 재현에는 이르지 못했다. 재료가 모두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비단과 아교는 일본제고 먹은 중국제다. 천연물감도 수입해 쓴다.

“어진은 왕실 그림이라 수입 재료를 많이 쓰긴 했지만, 비단이나 먹은 국내에서도 만들었어요. 어진보다 아래 단계의 그림들엔 한국산이 많이 쓰였죠. 그런데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비단장(緋緞匠)에게 비단을 달라고 해도 받을 수가 없어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비단 짜지 않은 지 오래인 채 연로해졌고, 후계자도 없으니 물건이 나오지 않아요.”(박지선)

중국과 일본엔 남아 있는 전통이건만 우리나라에선 모조리 끊긴 셈이다. 맛있는 걸 먹어봐야 음식 맛을 알듯, 문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값싸게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기술, 최상의 재료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길을 걷는다. 최고의 기술을 보여주면 보는 눈들이 생기고, 일정한 수요가 생기면 이를 직업으로 삼는 장인들이 다시 돌아올 거고, 그럼 유물뿐 아니라 무형의 관습까지 후손들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이다.

“정확한 모사는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잇고 고급문화를 창조하는 작업이라 믿어요.”(박지선)

어진(御眞) 모사 순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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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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