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북-미 공동성명] 북 국제무대 데뷔 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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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은 대미(對美)관계를 전쟁관계로 보던 그동안의 관점을 불식하고 평화관계로 전환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로 북한 군부를 대표하는 조명록(趙明祿)특사를 미국에 보냈으며, 미국은 이러한 의도를 진의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제 북.미 양국관계는 현재의 적대적 상태에서 포괄적인 평화협상 단계를 거쳐 정상적인 평화관계로 급속히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북.미 공동성명은 지난 50년간의 불신이 무색하리만큼 획기적이며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먼저 북.미는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데 합의하고 이를 위해 4자회담을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4자회담이 한반도 평화질서 구축의 기본 틀로서 재가동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4자회담에서는 남한이 주장하는 '남북한 평화협정' 과 '미.중 보장' 이라는 '2+2' 식 해법과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평화협정' 이 서로 절충되는 선에서 다무적.쌍무적 협정들이 산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도 비록 구체적인 내용 합의엔 이르지 못했지만 협상이 진행 중인 동안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상당한 진전을 이룩했다.

공동성명에는 표명되지 않았지만 양국은 적어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와 수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적절한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정도의 내면적 인식 공유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써 북.미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시소게임에서 벗어나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이 해법으로 제시한 '페리 프로세스' 에 따른 미사일 협상에 본격 진입하게 됐다.

양국이 '내정(內政)불간섭' 을 선언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쌍무적 관계뿐 아니라 다무적 외교공간에서도 접촉하기로 한 점도 의미가 있다.

이는 테러지원국 해제 및 경제.무역 전문가들의 상호방문 합의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 나설 수 있도록 해줄 것이며 그들이 세계경제와 정상적으로 교호(交互)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더욱 극적이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전쟁에서 평화로 이행한다는 합의를 제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1972년 2월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방문이 동아시아에서 냉전을 완화시켜 보려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다면 조만간 실현될 클린턴의 북한 방문은 그후 30년간 대결과 협상이 교착돼온 냉전을 종식시키는 마침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노력▶내정 불간섭 선언▶미사일 문제의 해결방향에 대한 인식공유▶클린턴의 북한 방문 등으로 이제 비로소 한반도에는 냉전구조가 해체될 수 있는 진정한 발판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빠른 진전은 이번 공동성명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미 공동선언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북.미관계의 급진전이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의해 조성된 새로운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미 공동선언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라는 바탕 위에 위치하게 됐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이는 이번 북.미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가지며, 이와 동시에 병행.발전해 나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종석 <북한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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