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향후 한반도 정책] '고어 측면 지원용' 전격 합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 결정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기조가 완전히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이래 확산되고 있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흡수해 '포괄적인 대북 포용정책' 으로 선회했다는 뜻이다.

미사일.테러지원국 등 고질적 현안이 미해결 상태지만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큰 틀의 수교작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남북한간에 시작된 평화.화해 무드가 그 기폭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자칫하다간 한반도에서 행사해왔던 미국의 외교적 주도권과 입김이 크게 약화될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국내 정치적 요인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클린턴의 잔여 임기가 3개월에 불과해 미 행정부로선 북한과의 협상을 서둘러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클린턴은 자신의 재임기간 중 수많은 국제분쟁을 중재했다는 것을 큰 공적으로 강조해왔다.

코소보 사태에 적극 개입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중동평화 정착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또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 및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클린턴이 이번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도와주기 위해 과감한 평화외교 공세를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클린턴의 방북으로 북.미 긴장이 해소되면 고어가 대북 강경론자인 부시에 비해 힘을 얻는다는 논리다.

일단 클린턴에 의해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기본 틀을 크게 깨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시 후보가 당선하면 아무래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포기와 핵의혹 해소장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등에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등이 지연될 가능성도 크다고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북한이 조명록 특사를 서둘러 급파한 배경엔 정권이 바뀌기 전에 뭔가 이뤄놓자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방북이라는 결정적인 결실에도 불구하고 북.미 공동성명엔 미사일.테러 문제에 관한 한 구체적인 조치가 담겨 있지 않다.

앞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대선결과와 미사일.테러 문제라는 두 가지 핵심변수에 의해 크게 영향받을 전망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