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공장서 출발했던 삼미, 해운·특수강 그룹 일구다 97년 공중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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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삼미그룹의 모태는 1921년 창업자 김두식이 서울 을지로에 열었던 비누 원료 공장이었다. 6·25전쟁 후 그는 전후 복구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목재가공을 하는 대일기업을 설립했고 59년엔 인천 만석동에 국내 최대 제재공장을 세웠다. 60년대 합판 수출로 고속성장을 했다. 원목을 실어 나르기 위해 해운회사도 인수했다. 69년엔 3·1절을 기념해 삼일빌딩을 짓기도 했다. 삼일빌딩은 85년 여의도 63빌딩이 설 때까지 국내 최고층 건물로 서울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70년 삼양특수강을 인수해 목재·해운·특수강을 바탕으로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그룹이 안정된 77년 창업자 김 회장이 골수암에 걸렸다. 3년 뒤 그가 타계하는 바람에 맏아들 현철씨가 만 29세로 회장에 올랐다. 그는 경기중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고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마친 뒤 귀국했을 때 마침 특수강 증설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7000만 달러에 달하는 일본 기계 대신 독일 기계를 3000만 달러에 들여와 단번에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철씨는 젊은 혈기로 무리하게 그룹을 확장하다 83년 2차 오일쇼크를 만나 삼일빌딩과 삼미 슈퍼스타즈, 해운업을 매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승승장구했으나 89년 인수한 북미그룹 특수강 회사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95년 노태우 비자금과 97년 외환위기를 연달아 겪으며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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