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셈몰서 한국 체취 느끼기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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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제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한국적인 것은 포기했나”

20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앞두고 서울의 새로운 쇼핑명소로 자리잡은 삼성동 아셈센터의 ‘아셈몰’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뒤 하루평균 10만여명이 드나드는 이곳은 영화관,수족관,음식점,팬시점,패션상가 등 다양한 볼거리와 놀이공간으로 가득차 있다.

휘황찬란한 외국어 간판과 네온사인이 외국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한국의 체취는 거의 느낄 수 없다.특히 일본 상품이 홍수를 이뤄 눈길을 끈다.

◇ 아셈몰은 작은 지구촌=열대길, 계곡길, 폭포수길 등 8가지 주제의 길을 따라 음식점, 악세사리점, 커피전문점 등 1백77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대형서점 '반디 앤 루니스' (옛 서울문고)는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널찍한 공간을 마련하는 등 새롭게 변신했다. 다른 매장들도 깔끔하고 서구적인 인테리어로 단장했다.

64개 음식점 중 한국 전통음식을 파는 곳은 여섯 곳. 나머지는 TGI프라이데이스.스타벅스.부르스케타픽스 같은 해외 유명 외식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주부 文모(36.서울 서초구 반포4동)씨는 "죄다 외국업체 처럼 보이는 데다 한국적인 음식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며 "외국인이 많은데 우리 것을 알리는 데도 신경써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일제 팬시점 대거 상륙=일본인 친구와 이곳을 들른 申모(15.B중학교 2년)양은 한국 공예품을 선물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키티' 그림이 그려진 방석을 골랐다.

申양은 "친구가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과 똑같은 상품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했다" 며 "주변 가게도 모두 일본 제품 판매점이라 좀 챙피하기도 했다" 고 말했다.

코엑스몰의 1백13개 일반소매점 중 팬시용품을 파는 곳은 15군데. 이중 10개 점포가 일본에서 유행 중인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집중 판매하고 있다.

아셈타워와 수족관, 대형극장인 메가박스 등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리는 열대길에는 일본 캐릭터 상품점이 3곳이나 된다.

'이웃의 토토로' '헬로 키티' '포케몬' 을 판매하는 이들 매장에는 우비, 수영복, 소꼽놀이 세트, 전자게임 등 4만~10만원을 호가하는 일제 상품들이 즐비하다.

한 점원은 "움직이는 토토로 인형은 10만원이 넘지만 없어서 못팔 정도다. 물품을 눈여겨 본 뒤 돈을 모아서 다시 사러 오는 학생들도 많다" 고 밝혔다. 주말에는 수십여개가 팔려나갈 정도다.

◇ '한국의 멋' 어디 갔나=한국 전통 제품 판매점은 단 두 곳. 수십평 규모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외제 선물용품점과 달리 두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 있다.

관광지 선물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목각판화, 열쇠고리, 로보트 등이 진열돼 있어 '국적불명' 의 잡화점 처럼 보인다.

코엑스몰 상점 분양시 전매장에 최고가 낙찰제를 도입, 전통상품 판매점처럼 '장사가 잘 안되는' 곳은 입점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한 시민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인 만큼 한국을 간접체험할 만한 물건들이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며 "수익 차원을 떠나 가장 한국적인 가게가 지금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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