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Top Woman] 5·끝. 브룬틀란트 WHO 사무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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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여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살기좋은 세상' . 내 가족, 나아가 인류가 건강한 몸으로 안심하고 사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지구 환경은 아직 나아지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주위에 널려 있다.

"세계 환경과 건강의 가장 큰 적은 가난" 이라며 인류 건강의 개혁자로 활약 중인 그로 하를렘 브룬틀란트(61) 세계보건기구(WHO)사무총장은 그래서 여성들 희망의 상징이다.

-'여성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고들 하죠.그래서 더욱 WHO사무총장직이 어울려보여요.여성이라는 점이 직책을 수행하는데 영향을 미치나요.

"내가 지도자 위치에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고무한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나는 여성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대대로 여성들이 수행해온 긴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죠.같은 지도자라 해도 성(性)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그러나 어떤 지도력이건 핵심은 얼마나 효과가 있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달려있어요.성은 덜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지난 1998년 5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수락연설에서"WHO의 주임무는 도덕에 대한 관심과 세계인의 건강개선을 위한 기술적 리더로서의 역할"로고 규정하고 질병과 불건강을 퇴치하기 위해 모든 나라에서 공정하고 지속적인 건강시스템을 촉진할 것을 주장했지요.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까.

"2년여 먼 길을 왔죠.우리가 일하고 있는 풍경은 변화하고 있습니다.빈곤을 감소하려는 국제적 지원이 전례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발전의 중심에 건강이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이는 건강을 담당하는 행정부서만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도 건강을 주도해나가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죠.

우리가 주력하고 있는 말리라아 박멸·결핵퇴치·안전한 임신,에이즈의 예방및 이들 질환자 돌보기를 개선하는 공동협력 같은 겁니다.담배는 최소 30년간 산업화된 서구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임을 깨닫게 했습니다.WHO는 새로운 사고와 힘을 지니고 공동협력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화적 관습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여성들의 할레는 여성건강에 극심한 폐해를 낳고 있지요.세계보건기구의 대책은 없습니까.

"행위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문화적 특성이라고 수동적인 입장을 취해서도 안됩니다.WHO는 광범위한 여성과 자녀 건강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모로서 할레와 싸우게끔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목표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문화적 의미도 살리면서 이 '특별한 행위'를 포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란 지역과 상관없이 다 비슷해 최선을 다해 자녀에게 기회를 안겨주고 싶어하지요.딸의 건강을 좋게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사회적·경제적 미래를 즐길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할레폐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강조하지만 이 일은 국가는 물론 지역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는 여성할레폐지 정책을 확실히 세우고 이의 폐해를 국민에게 알리는 교육프로그램을 심도있게 실시해야합니다.특별히 지역차원에서 여성단체가 개입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어야합니다.여성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의 여성들은 영양실조,깨끗한 물의 결핍,출산과정에서의 사망,과도한 노동 등 많은 다른 심각한 문제와도 직면해 있습니다.이것은 할레와 정반대로 사회적·경제적 환경에서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여성 태아를 낙태하는 일이 빈번합니다.일부 국가에서는 여자아이를 유기하기도 하죠.건강하게 살기 이전에 생존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을 막아야 할 텐데요.

"출생전 성감별 이란 애매하게 규정된 전문적인 기술-이것은 실제로 어린 소녀들을 가치없게 여기는 문화적 가치관 때문에 유산하거나 죽이는 거죠-을 끝장내지 않고 여성의 건강개선에 관해 얘기할 수 없습니다.이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예컨대 초음파같이 이런 잘못된 과정에 익숙해진 기술의 가능성을 더 크게 인식해야 합니다.그러나 결국 이것은 가치관의 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현대사회를 해치는 낡은 전통적인 문화적 가치관에 뿌리박힌 행위를 끝내려면 진정한 이기심이 필요합니다."

-지난 50년간 발생한 말라리아·결핵·에이즈 환자 수가 전쟁으로 인한 군인·민간인 희생자의 6배가 넘지만 이들 질병으로부터 세계를 보호하는데는 군사비의 2%도 투자하지 않다는 WHO조사결과를 보았습니다.이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거나 구상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대다수의 질병은 가난으로부터 오죠.이것과 싸우기 위해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를 달성하는 열쇠는 투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이해하는 것이죠.이들 질병과 싸워 거둘 수 있는 이익은 대단하다못해 ‘감동적’입니다.

말라리아와 싸우기 위해 매년10억불 이상이 필요합니다.이것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의 국내총생산을 다 합친 1백20억불 이상의 경기부양효과가 있습니다.결핵도 이와 비슷합니다.연중 10억불이 약에 쓰입니다.

다음 5년이 지나면 대규모 사망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에이즈에 관한 투자도 커지고 있습니다.예방에만 연간 25억불이 필요합니다.병을 앓는 이들은 놀랄만큼 늘어나고 있고 돌보는 비용도 더듭니다.잠복기간에 드는 돈도 많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매년 국내총생산의1%이상을 지원금에서 축소한다는 벌칙을 내리는 중입니다."

-소아마비의 완전 퇴치를 내거는 등 어린이의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으시죠.어린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예.특히 수수께끼같은 질병인 소아마비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서구 태평양 지역은 10월에 소아마비해방지역으로 인정을 받습니다.5년내에 소아마비 완전퇴치는 이뤄질 것입니다.그러나 어린이 건강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의심할 바 없이 가난입니다.

어린이 건강을 개선하고 사망율을 극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여기에 초점을 맞춰 모든 나라가 노력하는 식의 협조가 필요합니다.수년간의 경험과 조사를 통해‘건강은 소비와 함께 한다’는 가정은 명백하게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좋은 건강이란 개인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만들어 나라번영에 이바지합니다."

-2003년을 목표로 한 담배광고 및 공공장소 흡연금지를 규정한 공중 보건조약 체결은 지금 어디까지 왔습니까.

"담배가 유행병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세계에서 담배로 인한 사망자는 98년 한해 약 4백만명이었지만 2030년엔 1천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이는 에이즈 전염성과 비슷합니다.

사망의 70% 이상이 발전도상국에서 일어납니다.담배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건강체제에 부담이 됩니다.이를 세금으로 충당해야하죠.또 생산성을 방해합니다.더욱이 개발도상국은 사회적·물리적 사회기본시설설립에 전력해야 해 인간이 만든 '유행병'에 지불할 돈이 없어요.

시장 넓히기에 혈안이 된 담배회사들은 젊은이들을 흡연습관이 들 때까지 꽉 붙들려고 온갖방법을 씁니다.'입장권'이 있는 디스코 나이트는 비어있는 담배곽입니다.십대들은 그곳에서 공짜 담배를 나눠주는 예쁜 소녀들을 만납니다.

젊은이를 위한 스포츠와 문화이벤트의 스폰서도 합니다.국경을 넘나드는 광고의 빛은 거대한 경제자원과 인공위성기술로 단번에 세계시장을 구축하려는 담배회사의 노력을 등에 지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담배를 통제하려는 기본틀에 동의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유엔1백91개 회원국은 우리에게 담배통제에 관한 기본틀을 발전시킬 것을 요청해 10월부터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합니다."

-지구 환경은 내일의 건강을 약속하는 터전이기도 합니다.현재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무엇입니까.

"건강과 마찬가지로 환경에서 가장 큰 위협은 가난입니다.가난은 불필요한 가장 거대한 오염자입니다.그러나 나는 이산화탄소 방출과 같은 문제에 서둘러 대처하지 않고 늑장을 부리는 것을 또다른 위협으로 덧붙이고 싶습니다.

또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지도자들의‘용기없음’이 문제임을 보여줍니다.단기적인 선거민들의 반대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장기적 이익을 얻으려 들지 않더군요."

e-메일 인터뷰 홍은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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