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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송강호·강동원 주연 ‘의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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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이냐 이념이냐. ‘의형제’는 그 쉽지 않은 선택 앞에 두 남자를 세운다. 송강호(왼쪽)의 넉살과 강동원의 진중한 매력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그만이다. [루비콘픽쳐스 제공]


‘의형제’를 보는 동안 중첩되는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다. ‘JSA’는 10년 전 583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당시로선 대단한 기록이었다. 꼭 남북화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송강호가 주연했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둘의 두드러진 공통분모는 흡인력이다. 흡사 초강력 진공청소기처럼 관객을 빨아들인다. 휴머니즘과 시스템(분단상황)의 갈등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대중적 화법으로 풀어내는 그 능란함이라니. 오랜만에 대중영화다운 대중영화를 만난 느낌이다. ‘JSA’는 당시 ‘쉬리’가 갖고 있던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깼다.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 개봉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의형제’는 설을 겨냥해 다음 달 4일 개봉한다. 그 폭발력이 ‘JSA’를 능가할지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버림 받은 남자들 만나다=‘의형제’는 두 버림 받은 남자의 이야기다. 국정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은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 각기 임무에 실패한다. 한규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이혼마저 겪는다. 지원도 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한규는 도망간 베트남 여성을 찾아주는 사업을 시작한다. 6년 후 우연히 재회한 두 남자는 함께 살기 시작한다. 서로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남과 북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가 ‘소통’을 시작한다.

소통의 길은 울퉁불퉁하다. 한규는 지원이 잡아 목욕탕 벽에 매달아놓은 씨암탉을 보고 질겁한다(아, 엉덩이 노출도 겁내지 않는 송강호! 그는 진정한 생활연기의 달인이다). 공존이 불가능한 두 남자를 묶어주는 건 외로움이다. 비밀과 갈등을 안고 위태위태하게 우정을 쌓아가던 이들은 마침내 폭발한다. 하필이면 명절 추석날이다. 비밀은 폭로되고 칼부림도 일어난다. 하지만 차례상을 차려준 뒤 “어머니한테 절은 올려야지”라는 한규 앞에 지원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

◆송강호에 웃고, 강동원에 울고=시나브로, 그러나 켜켜이 쌓여가는 두 남자의 정.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화해의 메시지도 비슷한 속도와 강도로 전달된다. 송강호와 강동원은 두 캐릭터에 따뜻한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송강호가 입을 뗄 때마다 웃음을 참기란 힘들다. ‘전우치’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강동원은 뛰어난 외모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특히 그가 ‘형님’을 위한 마지막 선택을 내릴 때 코 끝이 어느새 찡해져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의형제’는 송강호 덕분에 웃고, 강동원 때문에 울게 되는 영화다.

‘의형제’의 연출자는 장훈 감독이다. 2008년 소지섭·강지환을 기용한 저예산영화 ‘영화는 영화다’로 돌풍을 일으켰다. 김기덕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웠지만 스승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접근할 줄 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도입부터 아슬아슬한 대규모 차량 추격장면으로 시선을 제압한다.

물론 남파공작원이 PC방에서 암호해독을 한다든가, 동향보고서를 e-메일로 보낸다든가 하는 식의 허술한 디테일도 있다. 흥행을 고려한 듯한 판타지성 해피엔딩에 말도 안돼, 라며 투덜댈 관객도 없진 않을 것이다. ‘JSA’의 ‘이등병의 편지’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노래 한 곡이 없단 점도 아쉽긴 하다. 그런들 어떤가. 오랜만에 만난 대중영화다운 대중영화가 주는 뿌듯한 포만감을 한껏 누리면 될 일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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