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보다 30% 싼 급매물 미끼…중개업소 경매 입찰 대리 ‘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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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허모(44)씨는 최근 강남권에서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매물을 찾다 한 생활정보지에서 시세보다 30% 정도 싼 급매물을 발견했다. 강남구 개포우성9차 아파트 102㎡로 ‘10층, 시세 9억원, 매매가 6억800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동산 인터넷 정보 사이트를 확인하니 매매평균가가 8억3000만원, 로열층은 8억8000만원이었다. 매입하면 단숨에 1억5000만원 정도의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해당 중개업소를 찾았다. 하지만 중개업자의 답변은 허씨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반매매 물건이 아니라 경매 물건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속칭 ‘낚인’ 것이었다.

최근 주택 시장에서 이상한 급매물이 많이 돌아다닌다. 법원 경매에서 한두 번 유찰된 물건을 급매물인양 올려놓고 원하면 입찰대행을 통해 매입해 주겠다는 제안형 물건들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올라 수요가 늘어날 때 이런 물건이 많이 등장한다”며 “지나치게 싸다면 거의 경매 물건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는 경매대행을 통해 수수료를 감정가의 1% 정도 받는 게 관행이다. 입주를 위해 전 주인이나 세입자에게 집을 비우도록 하는 ‘명도’의 대가를 별도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중개업소에서 경매 물건을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2006년 이후 공인중개사의 법원 경매 물건 입찰 대행이 합법화됐다. 다만 경매 물건을 일반 매물인 것처럼 속여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급매물만 거래되는 사이트나 정보지에 경매 물건을 버젓이 올려놓을 경우 자칫 시세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강남구 삼성동 상아3차아파트 125㎡는 한 지역정보지 매매란에 ‘매매 9억원’이라고 표시돼 있는데 경매 물건이었다. 인근 크로바공인 관계자는 “이 아파트가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12억80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경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있다면 중개업소에 대행업무를 맡겨도 문제될 것은 없다”며 “해당 중개업소의 전문성을 우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매로 부동산을 살 경우 최소 2~3개월이 걸리고 낙찰가가 예상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실제 김모(51)씨는 지난해 말 서울 서초동의 H아파트 전용 85㎡를 입찰대행으로 마련했으나 시세와 같은 9억5000만원이었다. 정보지에 올라 있던 매매 금액보다 7000만원이나 비쌌던 것이다.

강동구 암사동 인터파크 공인 임광빈 사장은 “대행업체가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낙찰하는 데만 급급한 경우가 있다”며 “반드시 시세를 파악해 대리인이 제시한 입찰가 수준과 비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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