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장기화…의료계 뿌리째 흔들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의료계 장기 파업으로 병원이 도산하고 의료인력의 해외 탈출이 느는 등 의료 인프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국감자료에 따르면 파업기간 중 진료비 손실로 1천병상당 매달 50억~60억원의 적자가 누적돼 전체 의료기관 적자가 9천7백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8월 한달에만 93억원의 적자가 생겼다" 며 "이대로 나간다면 현재 수도권 종합병원 중 10여개가 수개월안에 부도위기를 맞을 것" 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학병원 8월분 보험청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6.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병원에 약을 공급하는 제약회사와 의약품 도매상도 휘청거리고 있다. 도매상의 경우 이달 들어 마산 W약품과 서울 U신약이 부도처리된 데 이어 송파구 소재 M약품도 부도위기에 몰리는 등 극도의 자금난을 겪고 있다.

제약업계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의약분업 실시에 따라 새로운 약품 포장, 약효 동등성 시험 등을 위해 제약업체들이 쏟아부은 돈은 8천억원 정도. 게다가 4천5백억원어치의 전문약을 공급했지만 의약분업 시행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A사 관계자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다음달부터는 우수 제약업체도 도산하는 사태가 줄을 이을 것" 으로 내다봤다.

의약분업으로 호황이 예상됐던 대형 약국들도 흑자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최근 서울 모래내 P약국 부도 등 2억~3억원의 시설투자를 했던 병원 앞 약국들이 자리를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동안 조제료 전자청구시스템(EDI)이 안정되지 않아 약값의 70%에 해당하는 보험청구액을 한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 의학교육 공백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전국 41개 의과대학 2만여명의 의대생과 전공의 1만6천여명이 4개월째 수업을 거부, 내년도 의대 신입생 선발과 의사 배출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의료 인력의 해외 탈출도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 국가시험(USMLE)에 응시하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평소보다 서너배 이상 증가했으며 삼성의료원 B교수, 아주대병원 L교수 등 의대 교수들이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 등 해외로 떠났다.

의사들의 투자이민도 증가하고 있다. 온누리이주공사 안영운 사장은 "캐나다 등 투자이민을 묻는 개원 의사들의 문의가 파업사태 이후 5배 가량 증가했으며 실제 이민수속을 밟는 의사만 10여명에 이른다" 고 밝혔다.

황세희 전문위원.홍혜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