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 장비 구입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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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구입한 불법 감청설비들은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외국산 고성능 장비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이들 장비는 초소형.최첨단으로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 전화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 어떤 게 있나=수사기관들이 구입한 장비 중에는 새끼 손톱 절반 크기로 음성을 전파로 보내주는 장치인 '초소형 수신 자동녹음기' (NR-180)' '바늘 송신기' '초미니 송신기(CD5000/s)' 등이 있다.

수사관은 이들 장치를 대상자의 사무실이나 집안에 던져놓고 1백~2백m 인근에서 수신장비를 켜놓고 있으면 된다. 통화나 대화내용은 자동적으로 고성능 수신녹음기에 채록된다. 수신장비 일체를 자동차에 실을 수도 있다.

비슷한 장치로 상대방 몰래 전화기에 부착해 대화 내용을 전파로 받아 듣는 '극초단파(UHF)카드형 송신기' 도 있다. 대상 회선에 연결하는 전화자동 녹음장치(DCR-2), 여러 채널을 엿들을 수 있는 '다채널 감청기' 와 '전화녹음기(KD-2200G).고성능 송수신기 등도 수사기관이 선호하는 장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구입한 무인가 장비중엔 FAX 감청 녹취시스템, 무선호출 신호 분석기처럼 팩스와 삐삐 감청을 할 수 있는 장비도 포함돼 있다.

팩스감청기의 경우 주로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을 상대로 주고 받는 정보들을 중간에서 들여다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삐삐정보를 가로채 보는 '무선호출 신호 분석기' 를 경찰이 대량 구입했다는 사실은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자료에서 처음 드러났다.

◇ 허술한 법령과 감시〓감사원은 정보통신부에 무인가 감청장비를 판매한 민간업체들에 대해서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 2호는 정보통신부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은 감청설비를 제조.수입.판매한 자에 대해서만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구입했더라도 수사기관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

대검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국가기관은 구매처인 민간기업이 정보통신부장관의 인가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없다" 고 말했다.

또 "검찰이 장비를 구입할 때는 조달구매와 마찬가지여서 공급업자가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고 주장했다.

이원호.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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