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헌재 "대선무효"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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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선거의 전면 무효화를 선언한 가운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5일 오후 연방 의회 의사당과 국영TV 방송사(RTS) 건물을 점령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수도 베오그라드에는 20여만명의 군중이 몰려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의사당으로 돌진하던 수만명의 시위대가 의사당에 불을 지르고 유리창을 돌로 파손하기도 했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폭동 진압경찰이 체루탄을 난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으며 시위대 중 수십명이 부상했다.

앞서 밀루틴 스르디치 유고 헌재소장은 5일 자유유럽 라디오 방송과의 회견에서 "지난달 2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전면 무효" 라며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 이전에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헌재 결정은 밀로셰비치가 재선거를 미끼로 총파업과 시위를 누그러뜨릴 시간을 벌면서 야당을 분열시키려는 의도" 라고 분석했다.

이날 결정은 탄광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과 경찰이 광원들에게 동조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밀로셰비치가 위기 타개책으로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유고 정부는 그러나 파업 중인 국영TV 기자.기술진 1백60여명을 해고하며 강경 대응, 유고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헌재 결정에 대해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야당 연합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이미 선언했던 유고 야당은 "이는 밀로셰비치가 집권 연장을 꾀할 시간을 주려는 것" 이라며 "재선거를 치러도 또 다시 부정선거가 실시될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 고 밝혔다.

야당은 또 "우리가 5일 오후 3시(현지시간)까지로 정했던 밀로셰비치 퇴진 시한이 지났다" 며 "지금까지 3일 동안 전개해온 하루 12시간의 파업을 24시간 파업으로 확대하는 등 전면적인 투쟁에 들어간다" 고 선언했다.

이날 유고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헌재의 결정에 반발, 이번 대선 사태 발생 이후 가장 격렬히 시위를 벌였다. 20만명 이상이 베오그라드 광장과 연방 의회 의사당 앞에 모여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외쳤다.

노비사드.니슈시 등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가 승용차와 트럭을 타고 베오그라드로 몰려들며 외곽도로에서 진입을 차단하던 경찰 차량을 뒤집는 등 충돌을 빚었다. 유고 경찰은 의사당으로 들어가려던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또 주요 시설 인근 도로에는 바리케이드를 설치, 시위대의 접근을 막았다. 베오그라드 경찰이 최루가스.바리케이드를 사용한 것은 이번 사태가 벌어진 후 처음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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