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을 무력화하라…미국, 인위적 조종 연구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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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국이 울상이다. '찰리'와 '프랜시스' '이반' '진' 등 강력한 허리케인이 미국의 남동부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1900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은 215개. 가장 큰 재산피해를 안긴 허리케인은 92년 마이애미와 루이지애나를 때린 '앤드루'로, 이때 피해액은 무려 260억달러(약 29조원)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허리케인은 가장 약한 1급에서 가장 강한 5급으로 나뉘는데, 앤드루는 4~5급(풍속은 시간당 210~25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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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상학회 전문지인 '기후저널' 최근호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하 지구물리 유체역학 연구소가 수퍼컴퓨터를 동원해 앞으로 수십년간 허리케인의 위력을 예측한 결과 지구온난화 등으로 2080년에는 5.5등급의 허리케인이 출현할 것으로 내다봤다.

허리케인의 피해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기상학자들은 허리케인을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묘안을 찾고 있다. 미국의 과학대중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0월호도 이 같은 움직임을 비중있게 다뤘다.

미국 대기환경연구소(AER) 로스 호프먼 박사는 "아직까지 허리케인을 조종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고안된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60년대부터 쌓여온 연구결과와 현재의 노력 덕에 수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허리케인을 조종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는 60년대 초에 있었다. 허리케인은 태풍과 마찬가지로 적도 근처의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 고온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서로 응집하면서 생기는 잠열이 허리케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에너지원이 된다. 60년대 초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비행기를 허리케인의 눈 근방으로 띄워 요드화은과 같은 구름씨를 뿌리는 것. 인공강우의 원리와 같은 것으로, 구름씨로 하여금 허리케인의 눈 주위에서 비를 만들게 함으로써 허리케인을 초기에 무력화한다는 원리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별다른 성과 없이 주춤거렸다.

기상청 남재철 응용기상연구실장은 "구름씨를 뿌릴 경우 미국에 진입할 허리케인이 멕시코로 방향을 갑작스럽게 바꿀 가능성도 커 주변국의 반발 등 부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의 아이디어는 수퍼컴퓨터와 카오스 이론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 허리케인에 관한 세세한 정보 수집과 카오스 이론을 접목한 시뮬레이션(가상실험)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허리케인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해수면에 기름막을 입혀 허리케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증기의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유막을 입히는데 쓰이는 기름은 수일 내에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성분이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적용 가능한 도구로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위성이다.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대용량의 마이크로파를 지구로 내려쬐는 방식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마이크로파를 쪼여 허리케인에 흡수될 수증기를 미리 제거하는 원리다. 호프먼 박사는 "마이크로파는 지구를 뜨겁게 데우지 않을 정도로 조절할 수 있어 현실에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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