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들이 창업에 성공하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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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생맥주 집을 운영하는 박종성씨.

올해 경기 회복이 기대되면서 기업마다 고용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퇴직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KT만 해도 사상 최대 규모인 5992명의 명예퇴직을 받았다. 특히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연령층)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창업을 통한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나 장사 경험 없는 퇴직자가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퇴직자가 창업해 성공하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자산 형편에 맞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조언을 소개한다.

안혜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쫓기듯 창업하는 건 실패 지름길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치킨매니아를 운영하고 있는 권종희씨가 치킨 배달을 나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상암동에서 레스토랑형 치킨호프전문점 ‘치킨매니아’(www.cknia.com)를 운영하는 권종희(51)씨. 은행을 다니던 권씨는 2007년 말 퇴직 직후 서둘러 분식집을 열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권씨는 “이것저것 따져봤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서둘러 창업한 게 실수였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비용을 모두 날리고 1년여 만에 문을 닫은 권씨는 지난해 5월 치킨호프전문점을 선택해 재기에 성공했다. 6개월 동안 면밀히 아이템을 선정하고 입지 분석 등 시장조사에 몰두한 덕분이다.

퇴직 후 쫓기듯 창업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창업하기 전 최소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사업 타당성 검토는 기본이고, 세무·법률 지식을 쌓거나 공인된 기관에서 창업교육을 받는 것도 좋다. 관심 업종에 잠시나마 취직해 실무 경험을 쌓는 것도 방법이다.

창업교육을 받으면 창업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소상공인진흥원에서는 예비 창업자가 자신의 적성을 진단할 수 있는 창업자가진단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청·한국프랜차이즈협회 등에서도 창업 정보나 자금 정보, 창업 컨설팅 등 다양한 창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업종 선택이 창업 성패 가른다

서울 논현동 영동시장 부근에서 생맥주전문점 ‘플젠’(www.plzen.co.kr)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성(51)씨는 지난해 8월 창업했다. 맥주가 나이·성별 상관없는 대중적인 메뉴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당시 완전 초보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종인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창업 5개월째를 맞는 요즘 115㎡ 규모 점포에서 월평균 3000만~3500만원 매출에 1000만원 정도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창업 업종을 고를 때에는 수익성·성장성 등도 두루 고려해야 하지만 우선은 안정성을 따져야 한다. 유행을 타지 않고 수명이 길며 시장에서 검증된 아이템을 고르는 것이 좋다. 창업 초보자로서는 모든 걸 직접 챙겨야 하는 독립 창업보다는 프랜차이즈 가맹 창업으로 시작해 경험을 쌓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직장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사무직 출신이라면 재고관리나 회계관리 등 관리 마인드가 필요한 판매 업종, 기술직은 손재주나 기술에 대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술서비스 업종을 고르는 게 유리하다.


적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다

실내환경관리업 ‘에코미스트’(www.ecomist.co.kr)를 운영하고 있는 김주형(47)씨는 두 달 전 공무원 생활을 접자마자 단돈 1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택한 주된 이유 중 하나도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나 점포·사무실 등에 설치된 자동향기분사기의 천연향을 리필해주거나 자체 개발한 향 공조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이다. 김씨는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어 도전해 보기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담당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파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임대료·인건비가 따로 들지 않아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장점.

이처럼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면 1000만~2000만원으로 창업할 수 있는 무점포 업종에 도전해는 보는 것도 방법. 5000만~1억원 정도의 자금이라면 반찬전문점·도시락배달업 같은 생활편의 업종이나 배달형 사업에 도전해볼 만하다. 점포 규모는 작아도 체계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요즘 같은 불황기에 가장 적절하다. 1억~2억원의 자금이라면 브랜드 파워가 있는 성장기 업종을 선택할 수 있다.

최고의 동업자는 가족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서 퓨전전통주점 ‘짚동가리쌩주’(www.zipsseng.net)를 운영하고 있는 이계용(63)씨는 2006년 말 퇴직 후 아들과 함께 2007년 초 창업했다. 손님 응대 등 직접적인 점포 운영은 아들이 맡고, 이씨는 자금운영과 직원을 관리하는 점포 관리자 역할을 한다. 아들이 직원 두세 명 몫을 하고 있어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창업 3년째인 요즘 132㎡ 규모의 점포에서 월평균 4000만원 매출에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퇴직자 창업의 경우 가족과 함께 점포를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지가 된다. 가족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의욕과 자신감을 북돋울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배우자와 같이 창업해 부부가 함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것도 좋고, 자녀와 함께 운영하면서 인건비 절감 등 점포 운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50대 이상 퇴직자의 경우에는 체력적인 부담을 고려해서라도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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