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지만 멋지다” … 아스널 뒤흔든 청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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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볼턴의 이청용이 나날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팀 안팎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기몰이에도 성공해 벌써 ‘이청용 현수막’도 등장했다. 볼턴 팬들이 대형 사진을 걸어놓고 이청용을 응원하고 있다. [볼턴 로이터=연합뉴스]

“상당히 활발했고 패스가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인 명장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의 평가다.

아스널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경기 후 이청용(22·볼턴)과 인사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낯선 한국 선수의 예리한 돌파와 칼날 패스에 깜짝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이청용이 18일(한국시간) 영국 볼턴 리복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와 풀타임을 뛰었다. 볼턴은 전반 28분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후반 33분 에두아르도에게 골을 내줘 0-2로 패했다. 승점 18점(4승6무9패)에 그친 볼턴은 20개 팀 중 19위에 머물렀다.

팀은 졌지만 이청용만은 환하게 빛났다. 이청용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후 날카로운 땅볼 크로스를 최전방 공격수인 케빈 데이비스에게 배달했다. 후반 2분에도 이청용은 오른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송곳 패스를 떨어뜨리며 아스널 수비라인을 흔들었다.

그는 후반 4분과 8분에 이어 38분에도 데이비스와 매튜 테일러에게 완벽에 가까운 패스를 제공했다. 공격수들이 조금만 침착했다면 모두 골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볼턴 구단은 경기 후 이청용을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뽑았다. 이청용에게는 볼턴 입단 후 세 번째 구단 선정 경기 MVP였다. 17일 폴커크(1-1무)를 상대로 스코틀랜드 데뷔전을 치른 기성용(21·셀틱)도 경기 MVP에 뽑혔으니 이틀 연속 ‘쌍용’이 유럽을 호령한 셈이다.

언론의 찬사도 이어졌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오른쪽 측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며 이청용에게 팀 최고인 평점 7점을 줬다. 볼턴에서 7점을 받은 선수는 이청용이 유일하다. 지역 일간지 ‘볼턴 뉴스’는 “이청용은 경기 내내 꾸준히 측면을 공략하며 아스널을 위협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크로스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스널전 맹활약으로 이청용은 오언 코일(44) 신임 감독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개리 멕슨에 이어 볼턴 지휘봉을 잡은 코일 감독은 아스널전이 데뷔전이었다. 이청용은 “경기 뒤 (코일 감독이)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고 이야기했다”면서도 “다른 선수들도 모두 칭찬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빅 클럽과의 대결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수확이다. 이청용은 지난해 10월 맨유 원정(1-2패)과 첼시 홈 경기(0-4패) 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볼턴 최고의 영입’이라는 평가와 ‘아직 빅 클럽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공존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날 이청용은 아스널 측면 수비수 아르망 트라오레를 완벽히 제압했다.

이청용은 경기 후 “강팀과 상대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후반 30분 이후에는 체력이 떨어져 고전했다”고 말했다. 볼턴과 아스널은 21일 아스널 홈 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겨 재대결한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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