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DVD 표준' 최후의 결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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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DVD의 표준규격을 둘러싸고 '소니 연합군'과 '도시바 연합군'이 벼랑 끝 대치에 들어갔다. 소니.마쓰시타 등이 중심이 된 소니 연합은 4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의 표준규격인 '블루레이 디스크 연합기구'를 출범시켰다.

소니의 니시타니 기요시(西谷淸) 상무는 "도시바 진영이 추진하는 'HD DVD'방식과 블루레이 디스크 방식을 통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규격통일을 위한) 대화를 할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내년 본격 출시를 앞두고 사실상 소니 진영이 타협을 배제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소니 진영의 이 같은 공세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규격 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 등 콘텐트 업체들이 소니 진영으로 기울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날 '블루레이'진영에는 '타이타닉''스타워스'등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한 20세기폭스사가 가세했다. 최근 소니가 인수를 결정한 MGM까지 더하면 할리우드 영화의 40%가량을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 델 컴퓨터 등 쟁쟁한 해외업체까지 소니 진영에 참여할 뜻을 비추고 있다. 블루레이 디스크는 도시바 방식보다 얇고 저장용량도 크다. 블루레이는 현재 DVD 용량의 약 5배로, 3배인 HD DVD를 앞선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면에서 모두 이미 대세를 장악했다는 것이 '블루레이'측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도시바 측의 계산법은 다르다. DVD플레이어의 핵심 부품인 광픽업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산요전기가 지난 8월 도시바.NEC주축의 'HD DVD'진영에 가세함으로써 소니 진영보다 우월한 양산체제를 갖췄다는 것이다. 또한 HD DVD방식은 현 DVD방식과 물리적 구조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현재의 DVD 제조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조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사 이익의 60%를 DVD에서 벌이들이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사들이 지금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결국은 HD DVD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게 도시바 진영의 판단이다.

도시바의 니시무로 다이조(西室泰三) 사장은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HD DVD플레이어를 999달러에 팔고 3년째에는 399달러에 내놓겠다"고 '저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도시바 진영은 내년 봄 '블루레이 연합기구'에 대항하는 'HD DVD 프로모션그룹'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양 진영의 대결은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시장을 양분했던 'VHS 대 베타' 전쟁을 연상케 한다. 당시 뛰어난 기술표준을 갖고도 VHS에 밀렸던 소니가 이번엔 제대로 설욕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서로 다른 규격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내년 하반기에 쏟아져 나올 경우 소비자들의 혼란도 예상된다.

한편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금까지 양쪽 진영의 기술개발 속도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표준경쟁에서 어느 진영이 이기든 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DVS사업부 김규년 과장은 "두 개의 레코딩 방식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있는 데다 규격통일이 안 돼 동시에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선 표준에 따른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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