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로 보고 바로 말한다…창간 35주년을 맞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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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이 사회를 감싸는 위기감 불안심리 불신풍조는 어디서 오는가.이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 변화의 풍향(風向)을 읽지 못한채 바로 보지 않고 바로 말하지 않고 바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위기현상이라고 진단할수있다.

우선 정치지도자들이 현실을 바로 보려하지 않는다.옷로비 스캔들에서 박지원외압의혹에 이르기까지 의혹의 실체를 바로 보려하지 않았기때문에 불신이 커진 것이다.의혹의 실체가 외부 아닌 내부,네탓 아닌 내탓에 있다고 보지 않기에 실체 파악이 잘못되는 것이다.

바로 본다해도 바로 말하지 않기에 바로 듣질 못하고 바로 실천하지 못한다.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사실상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정책을 주도하는 견인차다.

집권당이 바로 보지 않고 바로 말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바로 알고 바르게 실천할 수 없다.대통령은 바로 보는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바로 듣는 덕목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경제를 보라.의약분업을 냉정히 들여다 보라.경제 위기상황이 블랙 먼데이 하루 만에 일어난 돌발사인가.의료계 지식인들이 할일없어,제몫만을 챙기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병실을 뛰쳐 나왔는가.

집권책임자들이 현실의 문제점과 위기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기때문에 생겨난 정치실종 정책부재 현상의 결과가 아닌가.이러니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창간 35주년을 맞는다.언론이 가야 할길은 결국 바른 보도와 바른 비판을 통해 권력의 갈 길을 바르게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어떤 권력이든 바른 보도 바른 비판을 싫어한다.멀게는 군사정권이 직접적 언론탄압으로 바른 말 바른 비판을 봉쇠했고 가깝게는 지난해 권력이 우회적이고 교묘한 형태로 중앙일보를 탄압한 사례가 있었다.

우리는 지난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서 다시 한번 각오하고 천명한다.바른 말 쓴소리에 권력이 어떤 형태의 압력을 가하든 우리는 감연히 맞서 언론의 정도를 지켜 나갈것임을 독자 여러분께 약속 드린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거부한다.권력과 언론은‘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그래서 바른 보도 건강한 비판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키위한 생명중시의 ,인간을 받드는 밝은 사회를 구현코자 한다.

과거의 낡은 사고와 관행을 척결하고 21세기에 맞는 세계화 잣대를 통해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이것이‘중알일보의 길’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손잡고 나가야할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시각에서 우리 사회를 보고 어떤 잣대로 비판을 해야 할 것인가.지금 우리는 세계화와 남북화해 그리고 개혁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안은채 가고 있다.

세계화란 시장경제 논리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의 융합과정을 뜻한다.자유민주와 시장이라는 이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이 가치관을 얼마나 사회 깊숙이 전파시키느냐에 우리는 주력할 것이다.

세계화의 방향과 남북화해 협력의 목표는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있지만 상충하는 측면도 있다.6.15선언이후 급속히 정부의 대북정책이 빛을 잃어가는 이유는 상충하는 부분이 너무 많이 드러났기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양보하는듯한 지극히 저자세 대북정책이어서 불안한것이다.북의 경제를 도와주고 평화를 보장받자는 시장성의 교환 가치가 살아 움직이지고 또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대북정책이 비판을 받는 것이다.

개혁의 논리 또한 마찬가지다.김대중(金大中)정부가 여러 개혁을 주창하고 부분적으로 실천하기도 했지만 개혁의 방향이 미심쩍고 또 실천보다 이벤트성 선전에 너무 집착하기때문에 개혁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세계화의 흐름과 맞지 않기때문에 개혁 피로증이 발생하고 개혁 실망감이 쌓이는 것이다.

말로는 시장경제의 논리를 강조하면서 실천은 민중선동주의의 포로가 되어 하향 평등주의로 가는 개혁방향은 옳지 못하다.정치든 교육이든 의료체계든 세계화의 잣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세계화의 핵심은‘시장성(市場性)’이다.시장성은 게임 룰을 지키는 공정성에 기반한다.그리고 선의의 경쟁과 다양한 선택을 특징으로 한다.우리 정치에 공정성.경쟁력.선택권이 있는가.

오로지 하나의 당론에 묶여 거수기에 저질의원만 살아남을 수있는 시장성 부재의 정치풍토다.우리의 교육에 경쟁력 선택권이 있는가.평준화라는 낡은 체제에 묶여 다양성 경쟁성 수요자의 선택권이 발붙일수없는 하향평준화가 교육의 기본이념이 되었다.

지금 의료개혁 또한 감정적 평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제대로된 준비없이 잘사는 의사꼴 보기싫다는 일방적 포퓰리즘에 휘말린 점은 없는가.의료수가 규제를 풀고 국민과 환자에 선택권을 줘야 하는데 개혁 방향은 그렇질 못했다.

사회보장체계로서의 평등주의적 사회안전망은 자본주의일수록 강화돼야 한다.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그것이 전부면‘거지의 평등’만 존재할 뿐이다.

시장이 작동해야 세계화로의 편입이 빠른 법인데 지금 개혁은 시장을 묶고 닫는 평등주의 일변도로 가는게 아닌가하는 의혹마저 일고있다.

남북화해와 협력도 북의 개혁개방을 유도해 시장성을 가르치고 세계질서로의 편입을 유도해야 하는데 따지지 말고 묻지마를 요구하는 대북투자니 정책의 투명성과 형평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여기에 한줄로만 서는 획일주의,이분법적 흑백논리 또한 세계화 진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모든 책임을 정권담당자와 정책입안자에 돌리는 것도 언론의 무책임이다.보다 과감하게 발언하지 못했고 보다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의 난국에 이르렀다는 반성을 우리 언론인 스스로가 해야할 일이다.

35세 장년의 중앙일보는 바로 이런 자성위에서 사람을 받들고 사회를 밝히며 세계화의 잣대로 미래를 펼쳐가기 위해 바로 보고 바로 말하며 바로 듣게끔하는 강한 언론으로 거듭 태어날 것임을 다짐한다.독자여러분들의 성원과 질책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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