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남북관계 눈높이 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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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1일 열린 제32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1년새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1차 SCM의 경우 같은해 6월 발생한 연평해전의 영향으로 '힘에 의한 연합방위력 강화' 가 주의제였다.

합의내용도 북측의 생화학무기에 대응하는 특수부대와 장비의 파견 등 유사시 군사작전 관련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남북관계 개선상황에서의 양국간 시각 조율' 이라는 거시적 관점이 회담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 새로운 한.미동맹 모색=남북간 화해.협력시대에 걸맞은 신(新)한.미동맹의 모색이 핵심 의제였다.

양국은 최근의 남북한 대화.협력무드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긍정적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위협을 전제로 군사적 차원의 강력한 대북 경고를 핵심으로 했던 종전과는 달리 북한측의 전향적 태도를 평가하되 유사시를 위해 연합방위태세는 굳건히 유지한다는 기조에서 진행됐다.

하루 앞서 양국 합참의장간에 열린 한.미군사위원회회(MCM)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국 장관의 기자회견장에선 미세한 간극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한.미간 긴밀한 대북공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남북관계 발전에 비중을 둔 반면 미측은 평화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코언 장관은 기자회견장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북.미간 신뢰구축 문제도 다뤄져야 한다" 고 주문했다.

또 주한미군 지위 및 평화협정 체제에 대해 "남북정상이 평화시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북측과 미사일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으로선 남북간 접촉에서 경의선 문제 외에 다양한 군사적 문제들이 다뤄지기 바랄 것" 이라고 분석했다.

공동성명 문안에 북측의 국제무기 관련 협약 준수 촉구, 북.미간 관계개선 희망 등의 문구가 들어간 것도 미측 요구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 묵은 현안 신속한 처리=양국 장관을 비롯한 군수뇌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 노근리사건, 한.미 미사일협상, 주한미군 토지관리계획 등도 논의했다.

양측은 양국간 우호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철저하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마무리해 한다는 데 합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측이 머지않은 시기에 타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줬다" 고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이 11월로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협의는 다음 정권에서야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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