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없는 필드 ‘무주공산’ … 양용은 제2 돌풍 기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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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16면

지난해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어 스타덤에 오른 양용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즈가 없으면 훨씬 많은 상금을 벌게 될 텐데, 그래도 우즈가 돌아오는 것을 원하느냐’고 친구들이 묻더라.” 양용은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그만큼 PGA 투어는 위기감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USA 투데이는 ‘우즈가 늦은 밤 코메디 쇼의 놀림감으로 전락했는데 PGA 투어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아무도 웃지 못한다’고 썼다.

2010 PGA 투어 관전 포인트

PGA 투어는 먹구름 속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이글거리던 태양 우즈 없는 PGA 투어는 빙하기에 접어든 투어와 같다. 그가 말한 ‘무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춥다. PGA 투어는 호황기에 모아두었던 돈으로 올해 지난해와 같은 대회 수(46)를 유지했지만 총상금은 2억780만 달러로 2009년에 비해 390만 달러가 줄어들었다. 우즈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 대회 수도 감소할 것이 뻔하다. 방송 중계권 계약도 큰 문제다.
 
우즈 복귀 목메는 PGA
우즈는 지난 10년간 일곱 차례 상금왕을 한 PGA 투어의 대체할 수 없는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이 사라지자 조연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커미셔너 팀 핀쳄은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도 우즈가 빨리 돌아오기를 빈다는 희망사항을 얘기할 뿐이다. 우즈가 없어도 올해 PGA 투어의 가장 큰 화두는 우즈다.

2009년은 PGA 투어에 좋지 못한 해였다. 메이저 우승자들은 모두 무명이었고 경기 침체로 PGA 투어의 무한성장 곡선은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2010년에 대한 기대는 컸다.

타이거 우즈

올해는 라이더컵이 열리고 메이저대회 3개가 타이거 우즈의 텃밭에서 벌어진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우즈의 안방이다. 두 번째 메이저인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은 올해는 골프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다. 이 코스에서 열린 오픈에 우즈는 두 번 참가해 모두 우승했다. US오픈은 페블비치에서 열리는데 바로 옆 스탠퍼드 대학에 다닌 우즈는 코스에 매우 익숙하다. 우즈는 2000년 이곳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역대 최저타 기록인 12언더파로 우승했다. 그래서 혹시 우즈가 그랜드슬램을 하는 것은 아니냐는 기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던 해였다. 그런데 주인공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라졌다.

우즈의 복귀 시나리오는 그가 무기한 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여럿 나왔다. 첫 번째는 3월 말 열리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을 통해서다. 이 대회를 주최하는 골프계의 원로 아널드 파머가 직접 티잉 그라운드로 나와 그를 환영하고, 용서하는 따뜻한 이벤트를 열어 우즈를 복귀시킨다는 설정이다. 파머도 젊은 시절 스캔들 때문에 비난을 받다가 복귀해 인기를 회복한 적이 있다. 대회가 열리는 베이힐 리조트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타블로이드 언론을 피하기가 좋다. 또 우즈의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출퇴근하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마스터스다. 4월쯤 되면 골프계에서는 우즈의 자숙 기간이 100일이 넘었으니 나올 때가 됐다는 여론이 무르익을 것이다. 마스터스는 우즈의 첫 메이저 우승을 안긴, 인연이 많은 대회다. 우즈가 우승하면 그가 이곳에서 만든 과거의 명장면과 오버랩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8승도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골프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 나오고 우즈의 스캔들은 잊혀질 거란 예상이 나온다.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은 아주 폐쇄적인 클럽이어서 사생활 보호에도 안성맞춤이다. 영국 타블로이드 파파라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복귀하기는 어렵고, AT&T 내셔널 등 자신이 주최하는 대회를 통해 복귀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모두 시나리오일 뿐이다. 우즈는 1년을 쉴 수도 있고, 몇 년을 쉴 수도 있다. 현재로선 언제 우즈가 복귀할지는 우즈도 모른다. 그러나 우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 우즈는 최고의 스타다. 고양이과 동물은 목숨이 9개 있다는 말이 있다. 그의 여자는 더 많지만.
 
스폰서 못 구한 최경주 모자엔 태극기
한국 동포인 앤서니 김이 2010년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그는 투어에 들어올 때 “호랑이 우즈를 꺾는 사자가 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우즈를 꺾지는 못했지만 타이거 우즈가 무릎 수술로 빠진 2008년 라이더컵에서 미국 대표로 나가 유럽의 에이스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꺾고 영웅이 됐다. 미국 언론은 “라이더컵에서 활약이 거의 없던 우즈보다 오히려 앤서니 김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앤서니 김은 우승을 하지 못했고 메이저대회에서는 한 번도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음주 등 이런 저런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존 댈리 2세’라는 말도 나왔다. 찰스 바클리는 “우즈는 평소에 술을 마시지만 대회 중에는 술은 물론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타이거를 닮아라”고 앤서니 김에게 공개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어깨와 손가락 부상에서 벗어나 시즌을 시작한다.

최경주는 모자에 태극기를 달고, 양용은은 KOTRA 로고를 박고 시즌을 시작했다. 애국적이긴 하지만 반가운 일은 아니다. 프로 선수들은 스폰서가 없는 것을 일종의 수모로 생각한다. 이 또한 우즈의 공백으로 인한 PGA 투어의 인기 저하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양용은은 돌풍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겁이 없고 퍼팅에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개 대회에서 연속 컷을 통과했는데 그보다 연속 컷 통과 기록이 많은 선수는 케니 페리, 짐 퓨릭(이상 미국), 그레임 맥도웰(북아일랜드), 레티프 구센(남아공) 4명에 불과하다.

최경주는 세계랭킹이 76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결코 그는 간단히 물러날 선수는 아니다. 나상욱은 지난해 PGA 투어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시즌 상금(270만 달러)을 따내 상승세를 타고 있다.
 
21세 신동 매킬로이 PGA투어 도전
필 미켈슨은 지난해 하반기 퍼팅 실력이 좋아지면서 우즈에 버금가는 선수로 성장했다. PGA 투어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과 중국에서 열린 WGC시리즈 HSBC 챔피언스에서 우즈를 꺾었다. 우즈는 미켈슨이 우승한 대회에서 들러리(2위)를 다섯 차례 섰다. 미켈슨은 우즈가 우승할 때 2위를 한 것은 네 차례다. 미켈슨은 우즈와 한 조에서 경기한 라운드에서 타수 기준으로 5승1무1패를 기록했다. 그래서 2010년 우즈와의 대결이 기대됐으나 우즈의 불참으로 역시 무산됐다.

미켈슨은 올해의 선수상이나 상금왕, 최저타상 등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우즈가 없는 올해가 미켈슨이 한풀이를 할 기회다. 내년쯤 세계랭킹 1위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세계랭킹 10위에 오른 신동 로리 매킬로이는 이제 21세가 됐다.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에서 뛰며 상금랭킹 2위에 올랐는데 올해는 더 큰 무대인 PGA 투어에서 진검승부를 벌이게 됐다. 지난해 우즈는 매킬로이에 대해 “공을 치는 것, 칩샷, 퍼트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평정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신인 중 최고의 유망주는 리키 파울러다. 아마추어 시절 그의 명성은 타이거 우즈와 앤서니 김의 중간쯤이다. 아마추어 8년간 최고 선수로 꼽혔다. 그는 워커컵 8개 매치에서 딱 1패를 기록했다. 지난해 스폰서 초청으로 PGA 투어에 나와서 7위와 준우승을 했다. 그러나 성공을 속단하긴 이르다. 매년 유망주가 나왔지만 이름값을 한 선수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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