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숙 화랑서 '나이젤 홀'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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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풍경은 제 작업에서 영감의 원천입니다. 한국의 한강과 비원에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와 조형미를 느끼고 작품화했습니다."

방한 중인 영국인 조각가 나이젤 홀(54)은 "이번 기회에 한국의 고미술을 견학하고 싶다" 며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수도권 2곳에서 열리고 있는 자신의 작품전에 참석차 지난 14일부터 10일 예정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다.

하나는 서울 청담동 박여숙 화랑(02-549-7574)이 25일까지 여는 '나이젤 홀' 초대전. 다른 하나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미술관(031-594-8001)이 기획한 '원을 넘어서' .

이 기획전은 홀을 포함한 4인의 유명조각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전시회로 오는 10월 21일까지 열린다.

홀은 미국.프랑스.영국 등 50여개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각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각국에서 1백여회의 개인전과 2백여회의 초대전을 가졌다.

방한은 1988년 이래 이번이 세번째. 88년엔 올림픽 조각공원에 각국 조각가 한명씩의 작품을 설치하는 행사에 영국을 대표해 초청돼 작품 'Unity' (통일)를 남겼다.

97년엔 박여숙 화랑의 초대전 '시각의 차이' 에 참석차 왔었다.

홀의 조각은 기하학적 형태들이 이뤄내는 긴장감과 실체적 존재감을 기반으로 하는 추상작품이다. 이번 방한 전시에서도 원과 직선.원호로 이뤄진 정제되고 추상화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홀은 풍경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풍경이 주는 역동성과 리듬.긴장감 등을 추상화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번 박여숙 화랑 전시의 대표작 '히든 밸리' (숨겨진 계곡)도 스위스의 계곡 이름이다.

그는 "계곡에서 기이하고도 직관적인 경험을 했다. 그것은 눈앞에서 공간 자체가 열리고 닫히는 느낌이었다" 고 소개했다.

작품은 좁아져 가는 타원의 단면과 넓어져가는 타원의 단면, 각각을 가로지르는 막대로 구성돼있다. 예민한 관객은 공간이 열렸다 닫히는 듯한 특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은 한강' 이란 작품도 전시 중이다.

그는 "한강은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를 넓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흐른다" 면서 "한강이 만들어내는 텅빈 공간을 여러 개의 다리가 역동적인 힘으로 구획하고 있다" 고 말했다.

'작은 한강' 은 여러 개의 원이 이어지며 닫히고 열린 공간들을 만들어내면서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홀은 비원의 부용지를 스케치한 후에 이를 작품화하기도 했다.

"사각형 연못 가운데의 원형 섬, 그위의 나무들이 긋고 있는 선은 한국의 독특한 고전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고 그는 말했다.

한편 모란미술관의 '원을 넘어서' 전에는 4개국의 조각가들이 원에 대한 나름의 깊은 해석을 담은 작품을 전시 중이다.

홀 외에도 독일의 파울 이젠라스(64), 스위스의 크리스티안 헤르덱(58), 서울대 조각과의 최인수 교수(54)가 참여했다.

독일 뮌스터 대학교수인 이젠라스는 자연.환경.시간.물질 등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조각가. 이번 전시엔 강철판을 이용한 연작들을 내놓았다.

헤르덱은 네온 튜브를 설치작업을 하는 스위스의 독보적인 작가. 이번 전시엔 컴퓨터를 이용해 환상적으로 빛을 조절하는 솜씨를 보여준다.

최인수는 점토조각으로 시공간을 표현하는 명상적 작품을 선보였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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