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 납북 미스터리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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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납북돼 이듬해 숨진 것으로 파악된 김동식 목사(오른쪽)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여자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계순희 선수와 기념촬영을 한 모습. [중앙포토]

10년 전인 2000년 1월 16일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한 식당에서 김동식(당시 53세·미국 영주권자) 목사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북됐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탈북자 지원과 북한 선교활동을 벌인 김 목사에 대한 보복 테러였다. 한·미 측의 송환 요구를 북한 당국은 외면했다. 자진 입북으로 조작하려는 북한 공안기관의 회유를 거부한 김 목사는 이듬해 2월 중순 평양의 한 초대소에서 숨진 것으로 관계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후 세인의 기억 속에 잊혀진 김 목사 납북사건이 발생 1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베일에 싸인 구체적 납북 경위와 북한 당국의 개입 정황을 밝혀 줄 단서가 새로 포착됐기 때문이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13일 “김 목사 납치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북한 공작원 출신 김모(45)씨가 최근 한국에 입국해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피랍탈북인권연대 측에 따르면 김씨가 조사 대상에 오른 건 지난해 말 미국으로 망명한 탈북자 전모씨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전씨는 “태국 이민국수용소에서 함께 미국 망명을 신청했던 공작원 출신 김씨가 ‘김동식 목사를 납치했다’며 털어놓았다”고 제보했고 관계 당국도 이를 포착했다. 김씨는 김 목사 납치와 탈북자 색출 등 중국 내 공작활동이 문제가 돼 중국 동북지역 교도소를 떠돌며 4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출소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신병 인수를 거부하자 배신감을 느껴 태국으로 탈출한 뒤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고 한다. 태국 이민국수용소에서 자신이 저지른 납치 행위를 동료인 전씨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이후 공작활동 개입과 복역 문제로 미국 망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반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도 대표는 “김씨가 납치 당시 김 목사의 팔을 잡아 택시에 강제로 태웠으며 북한에 넘기기 전 휴대전화와 돈 1000달러를 빼앗아 나눠 가졌다는 등 매우 구체적 이야기를 전씨에게 했다”고 전했다.

납치를 도왔던 중국 조선족 류영화씨는 서울에 몰래 들어왔다 체포돼 2005년 4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납북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북한 공작원의 증언이 나올 경우 김 목사 납치사건의 진상 규명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현재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자는 “북한 인권단체들이 김씨의 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김씨가 부인하고 있어 김동식 목사 납치의 주범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고 김동식 목사는 1947년 10월 경남 진해 출생으로 서울 고려신학교를 나와 80년부터 미국 생활을 했다. 96년 7월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북한 선수단 70명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등의 자원봉사도 했다. 이후 중국에서 탈북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99년 11월 탈북자 13명을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시키는 등 지원활동을 벌였다. 2000년 1월 옌지시의 한 식당에서 실종된 후 그해 9월 정부의 납북자 명단에 올라 납치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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