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꿈 키우는 뇌성마비 장애인 허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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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대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는 허환(許煥.23)씨.

그는 태어난 지 며칠만에 열감기로 뇌성마비를 앓아 손발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말도 불확실하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주위의 도움없인 식사가 어렵지만 그나마 움직이기 나은 입으로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 5일 대구대 실기실을 찾았을때 그는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작업실엔 그림 20여점이 놓여 있었다.

붓 등 도구들은 모두 끝에 이빨로 물기 쉽도록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사람 얼굴을 한 새 그림(80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산을 날고 있는 작은 새. 또 성모 마리아와 백합, 바닷가 나무 밑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소년, 두다리가 부러진 의자 등등. 입으로 그렸다고 믿기 어려운 그림들이었다.

許씨와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돕고 있는 같은 과 최종우(崔鍾友.26)씨는 "신체적 한계로 인한 고립된 생활 때문인지 자유롭게 나는 새를 많이 그리고 풍경도 생각이 많이 들어가며 종교적 정서도 엿보인다" 고 말했다.

崔씨는 "그림에 대한 애착과 노력은 정상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 라며 "하루 3~4시간만 자고 작업한다" 고 말했다.

학과장 김응곤(金膺坤.63)교수는 "관찰력이 뛰어나 형태감각이 뛰어나고 감정표출을 잘한다" 고 말했다. 許씨는 지난해 경북도전(道展)에 입선하기도 했다.

그가 붓을 물기 시작한 것은 특수학교인 부산 혜남학교를 다닐 때. 미술시간에 입으로 그린 그림을 본 교사의 칭찬이 계기가 됐다.

그의 그림 그리기를 돕겠다는 후원자가 잇따라 올해 대구대 대학원을 졸업한 한 60대 만학도는 등록금 전액을 책임지기도 했다. 許씨는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고, 세계구족화가협회에도 가입하려 하고 있다.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림이)잘 안될 때" 라고 답했다.

지치면 학과 친구들이 '티코' 라고 부르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산책하곤 한다. 요즘은 그림 외에 컴퓨터 재미에 빠져 있다.

개인 홈페이지(http://my.netian.com/~coom)도 만들었다. 살아온 이야기와 직접 쓴 시들을 싣고 작품이나 찍은 사진을 스캔해 올려 놓았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인 포토샵으로 새로운 작품 만들기에도 분주하다. '밀레의 '만종' 을 좋아한다는 그가 그림 속에 담는 꿈은 뭘까.

"어려운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해요. " 입과 손을 비틀며 어렵게 그가 한 말이다.

안장원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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