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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이나모리 JAL 조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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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13일 도쿄의 총리공관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나모리는 이날 법정관리에 들어갈 일본항공(JAL)의 최고경영자를 맡아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다.[도쿄 AFP=연합뉴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77) 교세라 명예회장이 일본항공(JAL)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JAL의 경영 정상화를 주도하고 있는 정부 산하의 기업재생기구가 그에게 JAL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달라고 SOS를 친 것이다. 그는 13일 이 제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이날 관저를 찾은 그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JAL의 재생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기업재생기구는 “내부 회의에선 처음부터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적임자로 꼽혔다”며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영인이자 경영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재생기구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을 CEO로 선임하고 기존 경영진을 물갈이할 방침이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자신이 신임하는 경영 전문가들을 대거 JAL에 수혈할 것이라고 이날 지지(時事)통신이 보도했다.

그가 구원투수로 낙점된 것은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하면서 수많은 경영 신화를 남겼기 때문이다. 전자부품·세라믹 제품 등을 만드는 교세라는 1959년 다른 회사의 공장 한구석을 빌려 종업원 28명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창업 후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년 흑자를 내왔다. 지금은 종업원 6만 명, 자회사 219개를 거느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가 존경받는 것은 경영실적 덕분만이 아니다. 인본사상을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도와야 하며, 능력보다는 심성이 좋아야 개인도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 오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직원의 정신적·물질적 행복 추구’를 회사의 경영 목표로 세웠다. 이런 경영철학 덕분에 교세라가 매출액 1조1285억 엔(2008년 기준)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인수합병(M&A)을 했지만 한 번도 잡음을 낸 적이 없다.

동양적 경영철학에 따르면서도 그의 무차입 경영과 아메바 경영은 철저히 계획적이고 과학적이었다. 그는 자기 분열을 해 가는 아메바처럼 언제든지 모였다 헤쳤다 할 수 있는 독립채산제로 회사를 운영해 효율경영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 통신산업 민영화에 나섰던 84년에는 KDDI 설립을 주도해 10여 년 만에 일본 제2위의 통신회사로 육성했다. 그의 철학을 추종하는 경영자가 많아지면서 설립된 사설 경영스쿨 ‘세이와주쿠(盛和塾)’에는 매년 3000여 명의 중소기업 사장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8400억 엔 규모의 채무를 지고 법정관리에 들어갈 JAL을 안전하게 ‘비상착륙’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가는 연일 폭락하고, 고객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13일에도 JAL의 주식은 하한가인 7엔으로 떨어지며 거래가 중지됐다. 한마디로 ‘시계 제로’의 운항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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