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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 중진작가 한수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중진작가 한수산(54)씨가 2년 6개월간의 발품을 팔아 천주교 성지순례기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 (생활성서.6천원)를 내놓았다.

이 책은 소설가로 살아온 한씨가 이제 막 새출발하는 제2의 인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것은 작가로서 가능한 신앙의 실천, 곧 믿음의 글쓰기다.

"제게 세례를 주신 고 이경재 신부님의 삼우제 미사를 마치던 날 '이제 때가 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천주교 박해의 발자취를 찾아 떠났습니다. "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짧지않은 사연을 깔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평생 성나자로마을이라는 나환자촌을 이끌었던 이경재 신부. 그는 1989년 백두산 정상에서 한씨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다.

한씨는 81년 필화사건으로 고문받던 당시 보안사의 책임자였던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조국을 등졌다.

"도저히 이런 나라에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는 판단에서 일본으로 날아갔다.

이신부 일행을 만난 것은 일본에서 알게된 지인을 따라 중국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신부와 일행이던 수녀의 권유로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한씨는 농담 삼아 "나는 카톨릭 삼수생" 이라고 말한다. 89년 이전 두 번이나 세례를 받으려고 교리공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갈등이 정리되지 않아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이경재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는 너무 마음이 편하더군요. 그리고 백두산을 내려오는 차안에서 따뜻하게 어깨를 누르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혼자 다짐했습니다. '하느님이 불러 쓰실 칼이 되기위해 부름의 순간까지 칼날을 갈겠습니다' 라고요. "

이 순간 한씨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한씨에게 '부름의 날' 을 가르쳐준 것은 이신부의 죽음이었다.

한씨는 그동안 천주교 박해사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50여 곳의 현장을 답사했다. 찾아야할 성지가 많이 남았지만 순례기록이 책 한 권 분량이 됐고, 마침 9월이 '순교자의 달' 이라 먼저 출간했다.

그는 성지순례에 대한 순회강연을 시작했으며, 내년에는 성인.성지 얘기를 다룬 소설도 쓸 계획이다.

"내 글을 통해, 떠남의 걸음마다 내 믿음에도 벽돌이 하나씩 쌓이고, 그것이 이 글을 읽을 사람에게 작은 가루로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하고 기도한다" 는 마음으로.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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