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고교생 '만세'…43년만에 재입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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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의 윤형근(尹馨根.62)씨는 지난 2일 환갑이 넘은 나이에 고교생이 됐다.

1957년 중도에 그만둔 청주농고에 2학년으로 재입학한 것. 이날 정식 교복은 아니지만 교복과 비슷한 차림에 책배낭을 메고 첫 등교한 尹씨는 맨 끝자리에 앉아 수학과 화훼과목 수업을 받았다.

실로 43년만이었다. 그래서인지 尹씨는 감격과 긴장의 교차 속에 약간의 진땀을 흘려야 했다.

"2시간짜리 화훼과목은 쉬웠는데 수학은 통 모르겠습디다. 하지만 따라가도록 노력해야죠. "

교실은 尹씨의 등장으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담임교사 오만영(吳晩泳.49)씨는 "어른을 학생으로 모시게 돼 호칭이나 대하기가 거북하긴 하지만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큰 힘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6.25때 부친이 납북돼 가정형편상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尹씨는 이후 벼농사를 짓다가 양돈업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갔다.

79년 돼지파동으로 생활이 막막해진 尹씨는 무작정 상경, 봉제공장 종업원과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하며 5남매를 키웠다.

그 중 장녀와 장남은 명문대를 졸업한 뒤 각각 행시와 사시에 합격, '월북자 아들' 로 낙인찍혀 공무원 시험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줬다.

7년전부터 틈틈히 중국어를 독학해온 그는 최근 1년6개월간 중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중국 전문가' . 대학 진학은 외국어검정시험을 통한 특차전형을 겨냥 중이다. 이를 위해 원거리 통학대신 교문앞에 자취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尹씨는 "검정고시도 있지만 옛명문고였던 농고를 꼭 졸업하고 싶었다" 며 "건강도 괜찮고 어린 동급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최신 가요도 열심히 배우고 있어 잘 적응해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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