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집 <1> 건축가 권문성 작 ‘인천 검암동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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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도서실 같은 인천시 검암동 주택의 2층 가족실. 이 집은 바깥에서 보면 견고한 벽으로 감싸여 폐쇄된 집처럼 보이지만, 집안에서 보면 1층과 2층, 안과밖, 방과 방이 교차하는 공간의 변화가 생동감을 준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듯 다양한 크기의 창에 담긴 풍경도 눈길을 끈다. [박종근 기자]

집은 우리네 삶과 가장 밀착된 공간이다. 그곳에서 매일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낸다. 나를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과 교류한다. 아파트 공화국이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요즘, 국내 건축가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완성한 집들을 찾아간다. 우리의 삶을 가장 소박한 원점에서 다시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 집의 어머니 방은 빛을 듬뿍 머금은 그릇 같았다. 바깥에서 평면 높이로 이어지는 1층.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벽은 투명하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이 내다보이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자락이 포근한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여기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은 앉아서 그림을 구경하는 거야. 며칠 전 다문다문 눈송이가 떨어지는데, 꼭 연하장 그림 같았다니까.” 낯선 손님에게 흔쾌히 방문을 연 어머니 김도분(73)씨의 인사다.

인천시 검암동 택지개발지구 안에 있는 이병권(45·농업)씨 집은 훈훈했다. 안팎의 흰 벽과 밝은 자작나무 빛깔의 마루를 타고 집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든 볕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모와 가족을 배려한 이씨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서다.

이 집을 설계한 권문성 교수(50·성균관대 건축학과)가 지난해 3월 집이 완공됐을 때 이씨에게 가장 먼저 물은 것도 “어머니 방이 맘에 드세요” 였다. 이씨가 설계를 의뢰하며 강조한 것은 ‘가족’이었다. 어머니와 아내, 두 아이가 함께 살 집이며, 주말이면 어머니를 뵈러 네 명의 누님과 남동생 가족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어머니가 적적하시지 않게 한 아이의 방은 어머니 방과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마당에서 바라본 집의 전경. ‘ㄱ’자 모양의 투명한 유리창으로 빛과 풍경이 들어온다.

◆자연을 한껏 들이다=건축가가 최고의 재료로 택한 요소는 ‘자연’이다. 권 교수는 “산자락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를 집안 곳곳에 가득 담겠다는 생각에서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 집엔 자연을 집안에 담아내는 장치가 곳곳에 눈에 띈다. 밖에서 보면 견고한 벽으로 감싸인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에서 보면 다양한 크기의 창에 조금씩 다른 풍경이 담겨 있다. 흰색 블라인드로 다듬어진 빛은 눈부시지 않고 차분한 공기처럼 집안을 감싼다.

◆열려있는 가족실=1층엔 할머니와 손녀의 방이 마주하고, 2층엔 부부 침실과 중학생 아들 방과 사랑방이 있다. 밝고 넓은 다락도 두 개다. 단연 돋보이는 공간은 계단 2층 왼쪽에 있는 도서관 같은 가족실이다.

“집을 지으면 꼭 만들고 싶었던 곳이죠. 아이들 공부방이나, 나만의 서재가 아니라 제가 신문도 보고, 아이들이 숙제도 하고, 함께 책도 읽는 곳입니다.” 어릴 적엔 좁은 집에서 12명의 식구가 한 집에서 살았다는 집주인의 작은 바람은 이렇게 이뤄졌다. 테이블 앞에 앉아 책꽂이를 바라보니 칸 사이사이로 가로, 혹은 세로로 숨어 있는 창이 보인다. 열린 공간을 중시하는 건축가의 배려다.

◆마음이 편한 집=이씨는 농사를 짓는다. 다른 수입원도 있지만 “본업은 농업”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에 맞춘 집’은 그의 꿈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를 위해 공기 좋은 곳으로 옮기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1년 동안 건축 관련 책을 뒤적이고, 파주·일산의 주택단지를 기웃거렸다고 했다.

권 소장은 그렇게 찾아낸 ‘파트너’였다.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고, 집안 곳곳에 사는 사람을 배려한 섬세함에 반해서다.

“다른 집은 몰라도 예술작품 같은 집은 사양한다고 말씀 드렸죠. 집은 마음이 편안해야죠.”

집 완공에 걸린 시간은 꼬박 1년. 부인 조경숙(40)씨는 “처음엔 집 짓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정작 살아보니 살면 살수록 좋아지는 집”이라며 웃었다.

이은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권문성=1959년 서울생. 서울대 건축학과, 동대학원 졸업. 건축설계사무소 ‘아뜰리에 십칠’을 오래 운영하며 주택과 리모델링 작업의 연작을 발표했으며, 2008년부터 성균관대에서 교육과 실무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광진교, 뚝섬 자벌레, 대구 동성로 등 공공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단독주택’ 설계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개인의 삶을 담는 집 설계야말로 모든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며 “건축가에게는 항상 도전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작업”이라고 한다. 주요작은 현암사·덕원 갤러리·임진각 리모델링, 헤이리 고막원, 서울대어린이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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