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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정치 위험도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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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는 지난해 엄청난 경제적 위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악은 피할 수 있었다. 지구촌 전체가 위기 탈출에 전력을 쏟은 결과다. 지난해엔 지정학적으로도 큰 위기가 없었다. 북한이나 이란과의 분쟁도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았다. 멕시코 마약전쟁은 미국 국경을 넘어 확산되지 않았다. 이라크도 비교적 잠잠했다. 크리스마스 때 미국에 위기가 있긴 했지만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진 않았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부르는 허리케인도 없었고, 거대한 지진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포로 다가온 신종 플루도 우려했던 것만큼 위협적으로 확산되진 않았다. 지난해 각국 정부는 대부분 힘든 정책적 결정을 보류했다. 그런 와중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붙였으나 그 결과는 상당히 약화돼 정책 위험도가 그리 크진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을 순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가장 큰 위험이 선진국들의 금융위기 극복 문제였다면 올해는 새로운 지구촌 질서가 야기한 문제들로 옮겨가고 있다. 새로운 지구촌의 질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결, 과거 일극 체제와 새로 부상하는 무극(無極) 체제의 대결,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날로 강화되는 국가 자본주의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2010년의 가장 큰 위험은 이 세 가지 대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올해는 미·중 관계가 악화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주도적인 국제적 역할을 요구하지만, 중국은 주도적으로 나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지난해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이를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은 핵확산 문제, 국제통상 문제, 사이버 보안,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의 이슈에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에 혹독한 경제제재까지 더해져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이란 핵개발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공격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올해는 이란이 가장 심각한 갈등지역이 될 것 같다.

선진국들에도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미국의 금융규제시스템 개혁, 충격으로 다가올 일본의 정치혁명, 유럽의 거대한 재정적 압박 등이 그렇다. 이머징 마켓도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브라질은 예상보다 더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최근 수년간 잠잠했지만, 분쟁의 기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높은 실업률에 올해 선거 홍수까지 겹친 동유럽, 유럽연합(EU) 가입 문제를 놓고 대내외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터키도 올해 조용히 보내기 힘들 것 같다.

테러리즘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국제적 골칫거리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도 없다. 최근 알카에다 근거지로 부상하고 있는 예멘은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임에 틀림없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대표
정리=정현목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