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9년전 못이룬 꿈을 향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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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현재는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 빠른 볼 아주 뛰어남. 마운드에서 타자 상대 요령이 특히 좋음.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메이저리거의 자질 있음' .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1991년.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제16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갔다.

그때 짐 스토클 LA 다저스 스카우트를 만났다. 그는 한국 투수진의 쌍두마차 정민태(현대).구대성(한화)에 대해 '2년만 가다듬으면 메이저리거감' 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이들의 스카우트는 실패했지만 3년 뒤 박찬호(LA 다저스)에게 다저스 유니폼을 입히는데 성공, 국내에도 유명해졌다.

정민태와 구대성. 91년 당시 한양대 재학 중이던 둘(정민태 4학년.구대성 3학년)은 국가대표팀 투수진의 '대들보' 였다.

그들은 국내 아마추어 최고의 우완.좌완임은 물론 국제무대에서의 명성이 증명해주듯 일본.대만 투수들과 견주어도 기량이 탁월했다.

그러나 그 대회에서 정민태와 구대성은 아쉬운 눈물을 흘렸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듬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대만에 본선 티켓을 내주고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본선에서 종이 한장 차의 실력이라던 대만과 일본은 각각 은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본선에만 올랐더라면 메달이 가능했다" 던 평가를 받았기에 이들은 그때 그 순간을 못내 아쉬워했다.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후 둘은 국내 프로야구팀에 입단, 명성에 걸맞은 길을 걸었다.

92년 현대의 전신 태평양에 입단한 정민태는 병역 기피 파동으로 고초를 겪은 뒤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으나 훌륭히 재기, 국내 최고투수로 자라잡았다.

98년에는 한국 시리즈에서 현대를 처음으로 정상에 올려놓고 MVP도 차지했으며, 지난해에는 최고 투수의 보증수표로 통하는 20승을 달성했다.

구대성도 거의 비슷했다. 정민태보다 1년 늦게 한화의 전신 빙그레 유니폼을 입은 구는 2년 동안 투구 폼 교정과 휴식으로 전성기의 위력을 되찾았다.

프로에서 전문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 구는 96년 다승.구원.방어율 등 투수부문 타이틀을 싹쓸이하며 정규 시즌 MVP가 됐고 지난해에는 팀을 창단 이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둘은 이제 올 시즌이 끝나면 나란히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다. 9년 전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하게 된다.

요즘도 수원.대전 구장에는 이들의 투구 자세를 관찰하는 스카우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진출 여부에 앞서 이들에게 이루지 못한 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올림픽 메달' 이다.

둘은 지난해 9월 잠실에서 벌어진 아시아 선수권에서 대표로 출전, 시드니 본선 티켓을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본선과 야구 최초의 메달 획득 여부다.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표팀 마운드의 대들보로 버티고 있는 둘이기에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엄청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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