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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프라피룬' 책상만한 바위도 들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태풍 프라피룬은 광풍(狂風)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태풍 피해가 보통 호우로 인한 것과는 달리 기상관측 이래 가장 센 바람을 몰고와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20명이 넘는 인명피해는 대부분 바람의 위력을 모르고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였다. 지난달 31일 밤부터 1일 새벽까지 순간 최대풍속 58.3m의 강풍이 몰아친 전남 신안군 흑산도.

육지로 올려졌던 5t 이하 선박 20여척은 빈 깡통처럼 하늘을 날았다. 흑산도 진리의 천주교회 앞 1백년 된 직경 60㎝짜리 소나무는 뿌리째 뽑혀 뒹굴었다.

집 안에서도 바람소리에 귀가 아프고, 두께 10㎜의 유리창이 고무판처럼 휘어지다 깨지곤 했다.

12마일 떨어진 홍도에선 바람으로 거세어진 파도가 책상만한 바위들을 15m 이상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서 콘크리트 방파제.물양장 등을 망가뜨렸다. 바닷가에 있던 대형 기름통들이 파도와 바람에 실려 산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흑산도 기상대장 최귀상(崔貴相.47)씨는 "기상대 근무 25년 만에 처음 겪는 바람이었다" 며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고 말했다.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 앞에서는 피항 중이던 선박 40여척이 태풍의 위력을 간과했다 낭패를 보았다.

천혜의 피항지로 알려진 데다 2~3m 간격으로 선단을 이뤄 선원들이 안심하고 배 안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강풍속에 집채만한 파도가 덮치면서 밧줄이 끊겨 제5홍영호(90t급) 등 5척이 바다로 빨려들어가 선원 1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빚어졌다.

또 1일 오전 3시쯤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진우리 동일 훼밀리빌라에서는 하동준(39)씨가 빌라 5층 옥상에 설치한 비닐하우스를 점검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돌풍이 몰아치면서 비닐하우스와 함께 날려 15m 아래 땅바닥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충남 예산.홍성.보령지역의 사과.배.포도밭 등 과수원들도 초속 15~50m의 강풍에 과수나무를 덮고 있던 비닐.그물이 갈기갈기 찢기고 과일이 땅위를 나뒹굴어 포탄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사현리 백남욱(63)씨는 "30% 이상의 감수가 예상된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부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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