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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앞둔 건강가정법 폐기하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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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의 법 체계를 통해 지금까지 가정의 개별구성원, 즉 아동.청소년.여성.노인, 그리고 장애인 등에 대한 복지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모.부자 가정에 대한 지원 혹은 가정폭력과 관련된 법을 제외하고 '가족 및 가정'에 대한 통합적인 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에는 법률적 바탕이 약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다양해져 가는 가족형태와 현상 등을 고려할 때 기존의 법으로는 이를 포괄하고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분명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제정된'건강가정기본법'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해 대상별 개인이 아니라 가정생활 자체에 초점을 둔 법이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가족과 위기가족.일반가정 등 다양한 범주의 가정을 포함하며 가족문제 해결과 치료뿐 아니라 지지, 보장, 예방, 삶의 질 향상, 건강성 증진 등 접근법에 있어 포괄성을 갖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2005년 건강가정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지난 9월 16일 건강가정기본법의 폐지와 더불어 그 대안으로 가족지원기본법(가칭)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시한 '(가칭)가족지원기본법'을 거론하는 간담회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아직 시행도 안 된 법을 폐기하라니 참으로 유감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이미 2001년도 '가정복지기본법'이라는 명칭으로 의원발의 된 상태에서 관련 단체와 학계.행정 주무부서 등의 토론과 논쟁을 거쳐 제목과 내용이 변했고, 지난 2월에야 제정됐다.

때늦은 반발은 '건강가정'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건강가정을 아들.딸 낳아 기르는 정상 가정으로, 혹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전근대적 가족모델로 이해하여 시대를 역행하는 법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다. 또 이 법이 건강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을 이분화하여,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소외시키고 낙인찍는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법에서는 그 어디에도 특정한 형태의 건강가정 유형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가족의 욕구충족, 그리고 모.부자 가정, 노인 단독가정, 장애인 가정, 미혼모 가정, 공동생활 가정, 자활공동체 등에 대한 지원 등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건강가정을 편견 없이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을 비건강한 가정과 대립시키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변화하는 문화와 갈수록 다양해지는 생활양식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줄 뿐이다.

또한 건강가정을 그토록 이 시대에 역행하는'단어'로 이해한다면, 지난 몇 년 동안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주요 시책으로 다뤄져 왔던 '건강가정의 구현'은 도대체 무엇인가? 변화하는 사회에서 '가정'의 자리를 새롭게 조명하고 새 틀을 짜야 하는 이때, 건강가정기본법의 시행을 몇 달 앞둔 이 시점에 일부의 법 폐지 논쟁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송혜림 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