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백남준 미술관'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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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자예술의 미켈란젤로' 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대규모 국내 회고전이 장안의 화제다.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의 세계' 의 관람객이 개막 한달 만에 6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폐막일까지 아직 두달여나 남았으니 이대로라면 생존작가 국내전의 최대인파 동원 기록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엄청난 인원이 '백남준의 세계' 를 찾아 나서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이 있다.

첫째가 외국인 관람객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여행자 차림인 외국인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호암갤러리 관계자는 "주로 미국.프랑스.일본인들로 지금까지 다녀간 이들만도 줄잡아 3백여명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 관객동원 면에서 '백남준 전' 과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 천년의 삶과 예술' 이 내국인 일색인 것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둘째는 정숙한 관람 분위기다. 많은 인원들이 둘러보는 전시장은' 사람에 떼밀려 다니느라' 북새통을 이루기 십상이다.

안내 팻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방향을 잡아 서로 몸을 부딪치는가 하면, 아예 작품 감상은 뒷전이고 잡담을 해대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의 통례. 그러나 백남준 미술전은 달랐다.

최신작인 '동시 변조' 를 비롯, '부처와 TV' 'TV 정원' '촛불 프로젝션' 등의 작품 앞에선 관람객은 발길을 멈춘 채 골똘히 상념에 빠져들어 전시장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미술계 인사 가운데는 "백남준 전이 관람 문화를 바꿔놓았다" 고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해마다 늘어나 올해는 5백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순수 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나 국제회의 참가차 오는 이들을 위해서도 '수준 높은 볼거리' 의 제공이 필요하다. 더욱이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로 한반도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지 않은가.

서울 사간동의 기무사 자리에 백남준 미술관을 세우는 결정은 그래서 더욱 서둘러야 한다.상설 전시로 볼거리도 제공하고 국민의 문화수준도 높이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이기 때문이다.

홍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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