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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경차사랑 모임 '1000cc넷'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울 올림픽대로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공원이 있다.영동대교 남단 부근의 청담도로공원이 바로 그 곳.

경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1000cc넷'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이 곳을 향해 핸들을 돌린다.

지난 23일 오후 7시. 모임시간을 두 시간이나 남겨놓았지만 이미 10여대의 경차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현란한 선팅에 TV까지 단 스포츠카 같은 모습부터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의 수수한 모양의 경차까지 다양했다.

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차 구경. 일주일간 새로 바꾼 게 있는지 서로 살피고 신차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즉석에서 간단한 정비를 하기도 한다. 이날도 차문이 잘 열리지 않아 고생하는 회원과 에어클리너를 교체한 후 소음때문에 걱정하던 회원이 도움을 받았다.

조그마한 이상에도 카센터를 찾기 일쑤인데 이들에겐 차문을 뜯어내거나 부품을 만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박정곤(朴正坤.32.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씨는 "장갑끼고 기름때 묻혀가며 차를 만지고 나면 그제서야 내차라는 느낌이 든다" 고 말했다.

'1000cc넷' (http://www.1000cc.net)이 출범한 것은 지난해 5월. '천짱' 으로 불리는 동호회장인 이동진(李同鎭.24.컴퓨터 프로그래머.서울 강동구 암사동)씨가 취미삼아 만든 개인 홈페이지가 모태가 됐다. 1년3개월 남짓한 기간에 회원수는 전국적으로 6천6백여명으로 불어났다.

서울.경기지역만 2천여명의 회원이 있다. 매주 수요일 정기모임에 나오는 골수 회원은 50명 안팎. 얼굴을 맞대는 모임에서도 이들의 호칭은 '바이러서' '코무스' '애기분자' 등 인터넷 상의 아이디(ID)다.

이들은 경차를 타게 된 동기로 경제성을 첫손에 꼽는다. 朴씨는 "속도 낼 일도 별로 없고 주차공간도 좁은 서울에서 경차만한 차가 있느냐" 고 반문했다.

깜찍한 디자인과 아기자기한 실내도 이들이 경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차 꾸미기에도 열정적이다.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은 최대한 낮춘다. "돈으로 차를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으로 차를 꾸미는 것" 이 이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물론 경차의 불편한 점도 안다. 큰 유모차는 트렁크에 싣기 힘들고 편의장치도 많지 않다. 호텔로비에서 당하는 면박이야 참겠지만 초보운전자 취급당하는 건 약이 오른다.

그래서 이들은 경차의 권리 찾기에도 열심이다. 지난 6월 서울시가 경차에 대한 주차료 할인제를 없애려 하자 이들은 3일만에 1천2백여명의 서명을 받아 백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떼달리기' . 한달에 두번 정도 20~30여대가 일렬로 늘어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양수리까지 달리는 것이다. 비때문에 이날은 떼달리기를 하진 않았지만 공원을 떠나는 차들의 뒷모습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들의 자신감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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