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차 남북정상회담, 장소의 협상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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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02면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연설과 북한의 신년 사설이 나온 뒤 더욱 그렇다. 이 대통령은 비약적인 남북관계 변화 의지를 밝혔다. 북한도 이례적으로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남 비방을 자제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설 등이 교차하면서 한반도 기류가 반전되는 분위기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강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말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뒤 온 북측 조문 사절과 싱가포르 남북 비밀 접촉에서 분명하게 감지된 기류다. 북한 전문가인 빅터 차 교수도 “김 위원장이 비즈니스맨 출신인 이 대통령을 만나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장소’다. 2000년과 2007년,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으로 갔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은 ‘협상 잘 하는 나라’라고 소문이 났다. 물론 비아냥 섞인 평가다. 특유의 벼랑 끝 전술로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해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식량을 챙기면서, 그 사이에 핵 실험을 두 번이나 했다. 인도처럼 핵 보유국 대접을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정상회담 장소에 관한 협상만 놓고 보면, 우리 정부 역시 북한에 졌다. 2007년 말 임기에 쫓긴 노무현 대통령은 북측의 서울 답방 약속을 없던 얘기로 하고 평양으로 찾아갔다. 스포츠 경기가 그렇듯 정상회담 역시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다. ‘높은 사람’을 보려면 대개는 ‘낮은 사람’이 찾아간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신변 안전을 이유로 들지만, 선전 효과도 노릴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장소’에 민감하다. 남쪽의 대통령 3명이 연거푸 평양을 찾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국제외교 관례상 상궤에 맞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비밀 접촉에선 ‘개성’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그 뒤, 북한 땅이긴 하지만 남북이 함께 터를 닦은 금강산이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의 섬’ 제주도도 언급됐다. 최근 한 보수단체가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동해안 비무장지대의 한 곳을 골라 지뢰를 제거한 뒤 제3차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장소를 둘러싼 신경전을 피하면서 화해·평화 무드를 과시하자는 뜻에서다. 잘하면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은 북한에 대해 ‘양보’의 자세로 임해왔다. 국민의 불만을 심각하게 누적시킬 정도였다. 남쪽이 강자이기 때문에 평양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세 번이면 질린다”는 말처럼 평양이란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남북 정상이 악수하고 사진 찍는 모습은 진부하다. 남북 정상회담도 진화해야 한다. 제3차 회담에 담길 콘텐트 못지않게 장소도 진화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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