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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되살리자 - 대한민국 르네상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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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책이 아닌 글자시스템으로서의 훈민정음 즉 한글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보 1호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골자로 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1월 3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 10여 명에 의해 공동발의 됐다. 매우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에 앞서 세 가지를 바로잡아야 한다.

# 첫째, 한글 자모의 순서를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의 원리에 따라 다시 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 정해진 순서(자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 모음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훈민정음이 아니라 1527년 최세진이 펴낸 아동용 한자교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를 따른 매우 임의적인 순서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던 이들이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지 못했기에 생긴 오류다.

# 훈민정음 제자원리에 따른 옳은 순서는 이렇다. 자음 ㄱ ㅋ / ㄴ ㄷ ㅌ / ㅁ ㅂ ㅍ / ㅅ ㅈ ㅊ / ㅇ ㅎ / ㄹ. 모음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자음의 경우 발성기관을 본떠 상형(象形)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ㄱ ㄴ ㅁ ㅅ ㅇ에 각각 가획(加劃)해 ㅋ / ㄷ ㅌ / ㅂ ㅍ / ㅈ ㅊ / ㅎ 이 만들어진 것이고 모음은 천지인(天地人=·ㅡㅣ)을 바탕으로 교합해 이뤄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순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창제원리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다.

# ‘·’음은 소릿값이 없어져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제가 의도적으로 죽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본래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에 대해 둥근 하늘을 상형한 것이라 했다. 따라서 ‘·’는 ‘아래 아’가 아닌 ‘하늘 ·’자로 고쳐 부르고 되살려야 마땅하다.

# 으뜸 모음인 ‘·’가 압살됨으로써 훈민정음은 ‘· ㅡ ㅣ’ 즉 천지인에 바탕해서 만들어졌다는 창제원리를 망실하고 말았다. ‘·’가 없다면 ㅡ 혹은 ㅣ와 결합해 만들어진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등이 존재할 근거조차 없다. 결국 ‘·’ 없이는 훈민정음이 알맹이 없는 거죽 글자로만 남게 된다. 그러니 ‘·’를 되살리자. 그래야 세종임금이 창제할 당시의 혼과 숨이 살아 있는 훈민정음이 된다.

# 셋째,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9월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옳지 않다. 마땅히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3(세종 25)년 12월을 기념일로 정해야 옳다. 창제일 기준으로 하면 한글날은 1월 중에 으뜸으로 잡혀야 한다.

# 훈민정음에는 중국 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곧은 줏대’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벗겨 주고자 하는 ‘어진 마음’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실용주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로 돌아가 바로 알고 바로 쓰자. 온전한 훈민정음을 바로 써야 국운도 융성하고 그 말과 글을 쓰는 우리들도 잘되지 않겠나?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