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비용 위법 19명뿐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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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월 총선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비용 실사 결과는 실소(失笑)를 자아내게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선거 당시 일반 국민이 느꼈던 체감지수와는 너무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출마자들이 선거비용을 신고할 당시 제기됐던 축소.은폐 의혹을 씻어주기는커녕 선거판의 '거짓말 게임' 에 선관위도 덩달아 춤춘 격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사실 선관위로선 법정 선거비용이 터무니 없이 낮은 비현실적 선거법을 갖고 선거관리를 '공정하게' 해야 하니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선거 당시 현장 취재보도를 종합하면 수억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썼다는 게 정설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법정 선거비용 1억2천6백만원으로는 홍보물 제작과 필수 운동원 일당 주기에도 빠듯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출마자들이 신고한 액수는 그에 훨씬 못미치는 1인당 평균 6천3백61만원이었다. 각 당이 총력전을 펼쳤던 수도권 접전지역에서도 그만큼만 썼다고 주장하고, 수백억원대 재산가까지 법정 비용의 절반만 썼노라고 시치미를 뗐다.

선관위가 철저한 실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의심 가는 지역구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선거판 전체이다 보니 크게 기대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선관위가 이번에 적발한 축소.누락자는 5백8명, 액수는 38억8천만원으로 1인당 평균 7백60만원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대로 모든 걸 다 파헤쳤는데도 이 정도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선관위의 실사가 결과적으로 축소.은폐에 면죄부만 준 형국이란 비판과 함께 '서투르고 재수없는' 경우만 걸렸다는 비아냥까지 뒤따르고 있다.

이같은 '거짓말 게임' 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선거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 돈선거를 막겠다는 명분은 이해하나 비현실적 법정 선거비용의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허위장부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조사까지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실 여건과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출마자들이 지킬 수 있는 합리적 수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 법정 선거비용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쓰는지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하고 실질적인 실사가 이뤄지도록 선관위 권한이 보다 확대.강화돼야 할 것이다.

실사결과에 대한 총체적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선관위가 여야 의원 19명의 위법 사실을 밝혀내 검찰에 고발한 것은 그나마 애쓴 노력의 결과다.

당사자들은 이런저런 해명을 하고 있으나 후속 검찰 수사가 한 점 의혹없이 철저하게 진행되길 촉구한다.

과거처럼 유야무야되거나 편파수사 시비가 있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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