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거침킥’은 캐릭터가 힘, 이번 ‘지붕킥’은 이야기가 힘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교감 선생님 김자옥과 노년의 로맨스를 즐기는 식품회사 사장 이순재.학교 과학실에서 몰래 데이트를 즐기다 들키자 황급히 뛰어내려 발목을 다쳤다. 사진은 순재가 창고에 숨어서 발목 찜질을 하는 모습. [MBC 제공]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인기가 거침 없다. 최고 시청률 26.2%를 기록하며 질주 중이다. 연출 김병욱 PD의 ‘시트콤 미학’이 꼭대기에 올라 섰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김병욱이란 이름은 한국형 시트콤과 동의어 관계다. 1998년 ‘순풍산부인과(SBS)’부터 ‘지붕 뚫고 하이킥’까지 우리네 시트콤의 진화를 상징해왔다.

김 PD는 4년 전 ‘거침 없이 하이킥(거침킥)’으로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보여줬다. 당시 등장인물들의 4자 별명(야동순재·까칠민용·식신준하·꽈당민정 등)이 유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지붕킥)’에서 한층 확장된 서사전략을 구사한다. ‘지붕킥’이 ‘거침킥’의 최고 시청률(24.2%)마저 깨뜨리고 인기가 치솟은 데엔 김 PD의 말마따나 “탄탄한 드라마적 구성”이 한몫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작과 동일 인물(이순재)에, 제목마저 비슷한 차기작이 시청자의 새로운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붕킥’의 인기 비결을 ‘거침킥’의 ‘야동순재’와 ‘지붕킥’의 ‘미스터 순대(시트콤에서 줄리엔이 이순재를 부르는 말)’의 가상대화를 통해 풀어봤다. 하이킥이 거침 없이 지붕 뚫은 까닭은?

▶야동순재=“어이, 미스터 순대! 요새 잘 나간다며? ‘거침킥’에 이어 시트콤 2연패 했구먼.”

▶미스터 순대=“그 순대 소리 좀 하지 마라. 여하튼 기분은 좋네. 김 PD가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한다고 했는데 그게 통했나 봐.”

▶야동순재=“그러게. ‘거침킥’ 때는 캐릭터가 훨씬 더 또렷했지. 내 별명 ‘야동순재’만 해도 그렇잖아. ‘식신’ 아들 준하나 당찬 며느리 박해미를 떠올려봐. 제 각각 분명한 성격의 캐릭터가 매회 완결된 에피소드를 전달했었지.”

▶미스터 순대=“‘지붕킥’ 캐릭터도 선명한 편이긴 해. 확실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떠받치는 게 김병욱 시트콤의 전형적인 특징이지. 하지만 ‘거침킥’에 비하면 이번 캐릭터는 조금 힘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 박해미처럼 중심 캐릭터가 ‘지붕킥’에는 없잖아.”

‘지붕킥’의 아역 캐릭터인 ‘빵꾸똥꾸’ 해리(진지희왼쪽)와 ‘꾸질꾸질’ 신애(서신애). [MBC 제공]

▶야동순재=“이야기는 훨씬 힘도 있고 재밌던데?”

▶미스터 순대=“그게 드라마의 힘 아니겠어. ‘지붕킥’엔 전체를 끌고 가는 중심 스토리가 있어. 크게 보면 산골 출신인 세경·신애 자매가 서울이란 낯선 도시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지. 또 네 명의 젊은 남녀(지훈·정음·준혁·세경)의 멜로이기도 하고. 큰 줄기의 서사가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는 셈이지.”

▶야동순재=“그래선가. ‘지붕킥’은 몇 회만 빠트려도 큰 흐름을 모를 때가 있더라.”

▶미스터 순대=“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졌다는 게 그런 점이야. 예전엔 한 편의 콩트였다면 이번엔 일일극처럼 연속된 이야기가 더 부각된 거지.“

▶야동순재=“그래도 ‘가족애’란 테마는 아쉽더라. ‘거침킥’에선 좀 가부장적이긴 해도 아버지인 내가 가족의 중심을 잡고 있었지. 아내 나문희와 통통 튀긴 해도 모성애를 감출 수 없는 며느리 해미도 가족이란 큰 틀을 지키는 인물이었어. 준하가 출근 첫날 해고된 에피소드를 떠올려봐. 온 가족이 불을 끈 채 울잖아. 그런 찐한 가족애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미스터 순대=“‘지붕킥’의 가족이 함께 살긴 해도 모래알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야. 가장인 할아버지는 교감 선생님(김자옥)과 로맨스에 정신이 없고, 사위(정보석)는 무능력해서 가족에 융화되지 못하지. 딸(오현경)은 모성애보다는 드센 성격이 더 강조되고, ‘빵꾸똥꾸’ 손녀 해리(진지희)는 방치된 채 버릇없는 모습을 보이잖아. 주목할 건 바로 세경·신애 자매야. 산골 출신인 두 자매는 무일푼에다 부모님도 부재 상태야. 돈이며 학벌이며 부족한 게 없는 해리네와 대조적이지.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세경 자매는 끈끈한 가족애를 드러내잖아. 묘한 역설을 통해 에둘러 가족애를 강조하는 셈이야.”

▶야동순재=“하긴 가족에 대한 힘이 줄어든 대신 사회에 대한 관심은 더 많이 드러내더라. 식모로 설정된 세경 자매만 해도 ‘계급구조’를 은근히 드러내는 설정이잖아. 이순재·김자옥 커플을 통해 노년의 사랑 문제를 건드리고, ‘서운대생’으로 설정된 황정음을 통해 학벌사회를 꼬집는 식이지. 인형뽑기에 중독된 신애의 에피소드에선 도박중독에 시달리는 어른들의 세계를 통쾌하게 비판했었지.”

▶미스터 순대=“캐릭터의 힘을 뺀 대신 서사를 강화했고, 가족의 비중을 줄인 대신 사회적 문제를 끌어안으려고 한 게 ‘지붕킥’의 핵심 같아.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선보인 셈이지. ‘빵꾸똥꾸’ 논란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만, 해리나 신애 같은 어린 아이를 내세운 것도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안게 된 요인 같아.”

▶야동순재=“‘거침킥’은 3개월 연장 방송을 했는데 이번엔 어떨지 모르겠네.”

▶미스터 순대=“김 PD 말이 지난번에 방송이 연장되면서 미스터리·스릴러 등 장르적 실험을 했던 게 흐지부지 돼버렸다고 하더라. 이번엔 무리한 방송 연장 같은 건 절대로 안 한다더군.”

▶야동순재=“어쨌든 미스터 순대! 방송 마칠 때까진 최선을 다 해라. 빵꾸똥꾸 소리 듣지 않게!”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