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종이 수입업자 이상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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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래 미뤄온 숙제를 마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시각디자인 산업 종사자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학습장이 됐으면 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고급.특수종이를 수입해 파는 한 기업인이 상설 종이 전시장을 냈다. ㈜삼원특수지의 이상욱(49)사장이다. 그는 최근 서울 중곡동에 3층짜리 건물을 사들여 '삼원 페이퍼 갤러리'를 열었다.

이 갤러리에는 국내에선 생산이 안 되는 최고급 종이류 3600여종이 진열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고급 인쇄용지와 그래픽디자인.봉투.포장.산업용지, 고급 미술용지 등이 벽면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펄프에 레이온 파이버를 박아 만들어 열을 가하면 색상이 변하는 플로트지, 반도체 생산공장 등에서 많이 쓰는 무진지 등 다양한 특수지들도 포함돼 있다. 영국의 아고 위긴스, 독일의 잔더스, 미국의 폭스 리버 등 20여개국 50여개 업체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이 사장은 원래 공학도였다. 대학(한양대 금속공학과)을 졸업한 뒤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에 다녔다. 1990년 회사를 그만두고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종이 수입업에 손을 댔다.

종이를 개발해 사용한 역사는 우리가 유럽보다 훨씬 길지만, 세계 최고급 종이는 모두 유럽.미국.일본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종이산업 발전을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년 전에 장학재단을 만들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는 몇몇 학생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좀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갤러리를 떠올렸다.

"고급 색상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 질감을 느껴봄으로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감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이 갤러리를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학습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문을 연 이래 이미 몇몇 대학 디자인 학과의 견학수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앞으로도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무료로 빌려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건물 지하에 소규모 강의실과 디자인 카페도 꾸미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갤러리 한쪽에 잔더스사의 아트 캘린더 특별전(10월 23일까지)을 마련했다. 잔더스사는 61년부터 매년(96년 제외) 독특한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캘린더를 제작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윌리엄 해럴드 웡(말레이시아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초대전'(10월 29일~11월 20일),'세계 코트지 제작물 특별전'(11월 26일~12월 11일)도 기획돼 있다.

글=이정민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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