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유탄' 맞은 임차농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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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도 후보지인 충남 연기군에서 30여년간 남의 땅 1만2000평을 빌려 담배 농사를 지어 온 이태영(49.남면 고정리)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이씨는 매년 담배 수확이 끝나는 8월 말 다음해 농사지을 땅을 빌리기 시작, 10월 초께면 목표치의 50%를 확보했지만 올해는 한 평도 얻지 못했다.

이씨는 "남면에 땅을 갖고 있는 외지인 7~8명에게 전화로 통사정했지만 '직접 농사를 짓겠다'는 말만 들었다"며 "내년부턴 농사짓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연기.공주 등 새 수도 예정지의 토지보상을 할 것으로 알려지자 땅 주인들이 영농 보상비를 챙기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일대 임차농 1500여가구가 영농 보상비는커녕 실업자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연기군과 공주시에 따르면 새 수도 예정지 내 농가 3700여가구 중 40% 이상이 임차농이며 이들이 경작하는 땅 주인은 대부분 수도권 등에 사는 외지인이다. 인삼을 재배하는 이학성(50.연기군 남면 종촌리)씨는 "내년에 인삼을 새로 심을 밭 8000여평을 확보하기 위해 땅주인 10여명과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가슴을 쳤다.

고추 심을 밭 1500평을 확보해야 하는 박한규(남면 고정리)씨도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나가 구걸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영농 보상비=현행 공익사업 토지보상법(제48조)에 따르면 수용 지역 농민은 해당 경작지 2년치 매출액을 영농 보상비로 지급하도록 돼 있다. 땅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시점에 농사를 직접 짓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임차농도 해당된다. 다만 땅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더라도 주소지가 수용지 반경 20km 밖에 있으면 영농 보상비를 받을 수 없다. 이 경우 결국 농민과 땅주인 모두 영농 보상비를 받지 못하게 된다.

연기군 남면 양화리 임백수(48)이장은 "정부가 만약 내년부터 보상에 들어간다면 보상시점이 아닌 올해 농사를 지은 농민에게 영농 보상비를 주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선의의 농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행정수도건설지원단 전병덕 전문위원은 "임차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연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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