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 "우리 자생식물 우리가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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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세계는 지금 '종자 전쟁' 중이다. 각국이 식물 유전자원의 확보 및 신품종.신기술 개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백여년에 걸쳐 대부분의 자생 식물이 일본과 미국 등 외국으로 유출됐는데도 그런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역수입돼 들어오는 개량종에 비싼 로열티를 주고 사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의 한 시민단체가 식물 유전자원의 주권 회복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족한 '우리 식물 살리기 운동' 이다. 회원은 2백50여명으로 다소 적은 편이다. 하지만 대학교수.식물원 연구사 등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운영위원으로 다수 참여하고 있다.

◇ 우리 식물 살리기〓이 단체의 주력 활동은 우리 꽃 보급이다. 지난 5월에는 서울.경기.인천지역의 초등학교 37곳에 초롱꽃.하늘매발톱 등 우리 자생화 15종 3백본을 각각 무료로 보냈다.

우리 고유의 자생식물에 대한 청소년의 시각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자생식물의 보존 및 자원화가 힘들다는 인식에서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대신 토종 자생화인 뻐꾹채 달아주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우리 식물에 대한 정보 수집도 이 단체의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설악산.소백산.지리산.한라산 일대에 사는 현지 주민들로부터 우리 식물에 관한 전통 지식을 채록하고 있다.

또 몽골.만주.북한을 찾아가 멸종 위기 식물의 복원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 5명의 회원이 14일 한국을 출국, 20일까지 몽골지역의 식물 탐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 자생종 멸종 위기〓한국은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공존하고 사계절이 뚜렷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식물다양성이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자생식물은 일제시대부터 수탈과 반출이 대상이 돼왔다. 북한산 자생종인 정향나무는 미국에서 개량돼 '미스 킴 라일락' 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전국 어디에나 자생하는 원추리는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출돼 백합의 신품종을 만드는 원종(原種)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자생종 식물이 보호.개발되기는 커녕 무자비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식물 살리기 나영삼(羅永三.33)사무국장은 "지난달 생태계 보전지역인 태백산 일대에서 하늘말나리 수천 포기의 뿌리를 캐간 흔적을 발견했다" 고 말했다.

羅씨는 "지난 봄에는 한라산과 덕적도 일대의 복수초(福壽草)가 뿌리채 뽑혀 일본 20여만본이 말반출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시장 논리에 기초한 자생식물의 생산과 유통을 방해해 국내 자생식물 산업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우리 식물 살리기 운동은 '자생식물 남획, 불법유출 근절을 위한 민간지킴이 운동' 을 계획하고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식물 살리기 운동 02-708-4052.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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