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야구계 '서태지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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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가수 서태지가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1992년 '난 알아요' 라고 외치며 나타난 서태지는 이후 96년 '교실 이데아' 에서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라고 기성세대의 틀에 박힌 획일화에 반기를 들었다.

프로야구에도 '서태지파(派)' 가 있다.

대부분 그가 가요계를 평정했던 92년부터 96년 사이에 등장해 요즘 프로야구의 주축이 된, 눈에 확 띄는 개성파들이다.

서태지의 외침처럼 획일화된 '틀' 을 거부하고 끝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기존의 틀을 깨버리는 '개혁성' 과 자신의 분야에 철저히 특화된 '전문성' 까지 갖춰 프로야구를 주도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14일 현재 프로야구 타격순위 맨 꼭대기부터 세명은 장성호(해태).박종호(현대).송지만(한화)이다.

이들의 타격 폼은 하나같이 '교과서' 와는 거리가 멀다.

장성호와 박종호는 이승엽(삼성)과 유사한 '외다리 계열' . 이승엽이 오른발을 몸 안쪽으로 틀며 들어올리는 데 반해 장성호는 그 자리에서 다리를 수직으로 들어올리며 타이밍을 맞춘다.

박종호는 오른발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내밀며 들어올린다.

마치 '시계추' 같다.

일본 야구를 평정한 이치로(오릭스 블루웨이브)를 연상케 하는 자세다.

최다안타 1위에 올라 있는 송지만의 '기마자세' 역시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다.

김성한(해태 코치)의 현역 시절 '오리궁둥이 타법' 자세에서 출발, 자신의 개성에 맞게 변형한 자세다.

'히팅 머신' 이병규(LG)의 타격 자세 또한 정석이 아니다.이병규는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나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타고난 감각을 살려 거꾸로 쳐도 3할은 친다.김영직 LG코치는 "놔두면 3할2푼 이상, 손대봐야 3할이다. 굳이 손을 대서 감각을 흐트러뜨릴 필요가 있느냐" 며 개성을 존중해 준다.

마해영(롯데)이 프로에 데뷔했을 때 그의 오픈 스탠스를 보고 "저런 자세로 무슨 타격을 하느냐" 고 비웃었던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해 그가 타격왕을 차지했을 때 아무 말도 못했다.

지난해 3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세운 박정태(롯데)의 타격 폼은 다른 사람이 흉내내기도 힘들 정도다.

개구리처럼 웅크린 박재홍(현대)의 타격자세는 야구 규칙 위반이 아니냐는 논쟁까지 불러일으켰고 8년 연속 3할을 노리는 양준혁(LG)의 타격 폼은 망나니 칼춤추듯 제멋대로다.

이들 '서태지파' 의 득세는 '자신에게 가장 편한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 라는 야구계의 금언을 확인시켜 준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타격 폼을 교과서대로 뜯어고치려 들었던 코치들도 요즘은 대부분 개성을 살려주는 쪽으로 돌아섰다.

몸이 모두 다른 선수들에게 똑같은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이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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