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집값 거품 '10년 전 일본'과는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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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즘 들어 집값이 계속 떨어지자 우리나라도 1990년대 초 일본이 겪었던 부동산 버블 붕괴와 이로 인한 장기불황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국내 대표적인 건설 및 부동산 전문가들 모임 중 하나인 (사)건설산업비전포럼(대표 김건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부동산 거품과 한.일 경제상황 비교'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세미나에서는 국내 부동산 거품은 90년대 초 일본과 비교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 등 자산가치 하락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면서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또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정부의 개발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새 수도 및 기업도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입지를 중심으로 토지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적인 과열현상이 장기적으로는 거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 한.일 부동산 가격변동 비교(서승환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국내 부동산 가격 전체에 거품이 있는 것으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서울 강남 등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에 일부 거품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90년대 초 일본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일본의 버블 형성기인 84년에서 90년까지 일본 전국의 부동산 가격은 네배 이상 올랐다. 이에 비해 국내 전국 부동산 가격은 94년 100에서 98년 외환위기 당시 80대로 떨어졌다가 2003년 110으로 올랐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일본식 부동산 버블 붕괴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일반 경기의 장기불황과 부동산 시장의 수축기가 장기간 맞물려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된 장기적인 로드맵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 즉 보유세를 강화한다면 거래세는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낮출 것인지, 전반적인 세 부담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다면 이에 따른 양도소득세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 부동산 거품과 한.일 경제상황 비교(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80~91년 연평균 4%에서 부동산 가격 버블 붕괴 이후(1992~2002년) 연평균 1.2%로 낮아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정도의 버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게 걱정된다. 현재 우리의 주택가격은 이론적 가치에 비해 7.4% 정도 높다고 본다. 또 전체 가계대출 252조원(2003년 말 기준) 가운데 105조원(41.6%)이 올해 만기가 돌아오며,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만기도래액은 42조원으로 40%를 차지한다. 다만 일본은 버블시기 주택담보비율이 100%를 넘어섰으나 우리는 60% 수준으로 부동산이 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전면적 버블 붕괴 후유증으로서의 장기 침체보다는 성장잠재력의 저하와 자산가치 하락으로 L자형 장기 침체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특히 유념해야 될 부분은 경제 형평성에 집착한 나머지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에 나서 시장상황을 왜곡시킴으로써 오히려 장기불황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주택가격 변동의 지역별 편차와 버블 가능성(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국내 부동산 가격 변동의 가장 큰 특징은 차별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수도권 내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또 공간적인 시장 구분이 아닌 재건축 가능 아파트와 재건축 대상이 아닌 아파트의 가격 차이 등 주택 가격 변동은 각각의 하부 시장별로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서울에서도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은 강남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고용분포와 통근 패턴의 변화, 그러한 수요 증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신규 아파트 공급 부족 때문이다. 또한 같은 강남이라도 재건축 대상이 아닌 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은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률을 조금 웃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강남 아파트의 평균적인 가격 상승률이 비합리적으로 높은 이유는 재건축 가능성에 대한 시장원리에서 찾아야 한다. 재건축 가능성의 가격 효과를 분석한 결과 강남이 아니더라도 서울시 전체의 재건축 가능 아파트는 비재건축 아파트에 비해 엄청나게 큰 가격 상승폭을 보여준다. 따라서 부동산 대책도 이 같은 하부시장에 따른 차이를 고려해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최근 주택시장 동향과 한.일 부동산 시장비교(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주택가격은 지난해 10.29 대책 이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반면 땅값은 주택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올 2분기 기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2.5% 올랐다.

특히 새 수도 건설 등의 영향으로 지역별 가격 차이가 확대되고 있어 충남 연기군의 땅값은 같은 기간 9.6% 올랐다. 이 같은 땅값의 상승은 주택시장의 안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즉 주택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버블 붕괴가 우려되는 한편에는 여전히 주택가격 상승 요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의 하락 요인으로는 재건축 규제, 주택거래 신고지역 지정 및 부동산세금 중과 등 정부의 직접 규제가 가장 크다. 반면 저금리의 장기화로 예금.채권 등이 안정적인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점, 경기 회복을 위한 통화 확대 등은 부동산으로 또다시 투자가 몰려 가격 상승을 유도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연이어 발표되는 정부의 개발계획도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같은 여건들을 분석했을 때 버블 붕괴에 대한 걱정보다는 장기적인 부동산 안정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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