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칼럼] 내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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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선 독자 여러분께 나의 개인적인 사정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지난 달 본사의 인사이동으로 서울 지국장으로서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NHK를 퇴직하고 저널리스트로서 독립해 당분간 서울에서 활동할 것을 결심했다.

*** 목표 상실한 일본에 실망

당분간이란 언제까지인가□ 우선 남북통일이 이뤄질 때까지라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한반도를 전문으로 하는 저널리스트로서 지금 막 시작된 통일에의 프로세스를 현장에서 지켜보겠다는 강한 집착이 나를 서울에 남아 있게 한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그렇다 하더라도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일본인이 조직을 버리고 여생을 한국 및 한국인과 운명을 함께 하려고 하는 것에는 더 뿌리 깊은 이유가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한국다운 것' 에 대한 애착이며, '일본다운 것' 에 대한 실망이다.

'한국다운 것' 에 대한 애착이란 한국인의 '얼굴' 에 대한 애착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 근방의 산속에 김형식이라는 80세에 가까운 노화가가 거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노인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인 명가에서 자라 경성제대에 진학한 엘리트였다.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에 실망해 월북, 6.25 이후 빨치산으로 침투해 태백산에서 붙잡혀 20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걸쳐 석방 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대기만성형 화가다.

프로그램의 취재로 만난 김노인은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과는 대조적인 젊고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빨치산으로서 사경을 헤매던 태백산을 그린 것이 많고, 그림에서 풍기는 고독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멎게 할 정도다.

그 김노인이 남북 정상회담의 소식을 접했을 때 보여준 어린아이처럼 상기된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이것이 한국인이구나라고 나는 느꼈다.

80세의 노인도 50대의 장년도 30대의 청년도 각자의 얼굴에는 한국과 한국인이 겪은 기구한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 온 늠름한 얼굴이자, 앞으로 자신들의 역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희망과 기개가 숨쉬는 얼굴이다.

나는 그런 한국인의 얼굴에 매료돼 있다.

그런 한국인의 얼굴에 비해 지금 일본인의 얼굴은 모두 생기가 없고 어둡다.

출장으로 서울에서 도쿄(東京)로 돌아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인이 목표를 상실해버리고 부유(浮遊)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초 하버드대학의 보겔 교수가 'Japan as No.1' 을 썼을 때 일본인은 미국을 제쳤다고 믿고 이젠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뒤돌아보면 일본의 쇠퇴는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서양에서 배운 기초기술을 개량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 을 만들어 그것을 팔아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축적된 부는 결코 일본인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부를 쓰는 목적과 방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수준에 있어서도, 기업이나 개인의 수준에 있어서도 자기 이외의 타인을 위해 공헌한다는 비전과 모럴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

존경받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 한국인의 기개에 반해

그런 일본인에 비해 한국과 한국인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일본이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여덟가지 이유' 를 써보고 싶다.

일본인에게 결여돼 있는 한국인의 장점으로서 나는 ①남북통일이라는 국가적 목표의 존재②애국심 ③공동체의식과 이타주의적 모럴 ④정치의 리더십 ⑤기업의 기민한 의사결정 시스템⑥디자인의 힘 ⑦개인주의 ⑧낙관적인 민족성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과 한국인은 우리들 외국인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이 3년 안에 하나하나 실현해 왔다.

사실상 처음 이뤄진 정권교체, 경제위기로부터의 놀라울 만큼 빠른 회복, 일본문화 개방,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IT혁명, 그리고 분단 이래 처음인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화해로의 진전이다.

이러한 국가의 대사업을 이렇게 짧은 기간에 달성한 그 배경에는 위에서 거론한 한국인의 특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매력, 그것은 사람들이 몸소 역사의 주체가 돼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매력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나는 그런 사회에 몸을 두고 사회의 변화를 내부로부터 발산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전 NHK서울지국장 기시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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