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반전 보니 나머지는 ‘용서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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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왜 살인범 성호(류승범)는 자기와 상관 없어 보이는 부검의 민호(설경구)의 딸을 납치했을까. ‘용서는 없다’는 순간의 선택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수 있음을 충격적인 반전으로 보여준다. [더드림픽쳐스 제공]

금강 하구에서 여섯 토막 난 여성의 사체가 발견된다. 새만금 개발을 반대해온 환경운동가 성호(류승범)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외국 유학 중인 딸과 좀더 시간을 갖기 위해 일을 그만두려던 과학수사대 부검의 민호(설경구)는 마지막 부검을 의뢰 받는다. 성호는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지만, 경찰은 물증이 없어 애를 태운다.

성호는 민호에게 민호의 딸을 이미 납치했음을 알리고, “딸을 살리고 싶으면 나를 풀려나게 해달라”고 협박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검의는 어쩔 수 없이 부검 결과를 조작한다. 성호는 풀려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호는 왜 하필 민호의 딸을 납치한 걸까.

7일 개봉하는 ‘용서는 없다’는 아마 한국영화 사상 ‘올드보이’(2003년) 이후 가장 충격적이면서 야심 찬 결말을 시도한 스릴러일 것이다. 이 영화의 반전은 쇼킹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멋진 반전을 선사하는 것이 멋진 스릴러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이른바 ‘반전강박증’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니까. 엔딩 장면을 확정하지 못한 채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기간 내내 결말을 어찌할지를 놓고 제작진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는 뒷얘기는, 이 영화의 야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요 투자사들이 투자를 꺼린 것도 복수와 용서, 혈연관계가 얽혀 핵폭탄급이 돼버린 결말 탓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용서는 없다’가 이룬 성취는 여기까지다. 뛰어난 스릴러가 되기 위해서는 도드라진 반전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무엇보다 결말에 이르는 여정이 길고 전형적이며 허술하다. 예를 들어 성호가 풀려나게 되는 결정적 증거, 즉 다른 용의자의 정액과 지문이 왜 그렇게 늦게야 발견되는지는 영화를 보면서 갖게 되는 수많은 의문 중 하나일 뿐이다. 왜 민호를 경찰이 아닌 부검의로 설정한 건지, 시체 부검 장면은 왜 그렇게 세세하게 보여줬던 건지, 범인을 처음부터 밝히고 범행 동기에만 이상할 정도로 초점을 맞춘 이유는 무엇인지 등과 같은 궁금증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해소가 된다.

물론 끝까지 의문을 풀어주지 못하고 길을 잃는 수많은 범작에 비한다면 ‘용서는 없다’가 제공한 퍼즐게임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의 강력한 ‘한 방’을 향해 줄달음치는 이 영화의 눈 먼 선택이 영리한 것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설경구와 같은 뛰어난 배우에게서 눈물과 콧물도 모자라 피눈물까지 짜내는 부성애 연기 이상의 무엇이 나오지 못한 건 이 영화의 결정적인 부실 중 하나다. 배우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결말을 위해 짜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상투적인 틀이 배우에게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형사 서영 역의 한혜진이나 시골 형사 종강 역의 성지루도 그 틀 안에서 방황하다 그친 느낌이다.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는 등장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류승범에게 향한다. 입에 착 감기지 않는 듯한 문어체 풍의 대사를 진지함과 빈정거림을 적절히 섞어 소화해낸 그의 캐릭터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 두 주인공이 맞붙는 취조실 장면의 긴장감은 전적으로 류승범의 기운이지 싶다. 김형준 감독의 데뷔작. 청소년 관람불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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